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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y 23. 2023

5년은 짧네

박사과정 4년째

슬슬 졸업 후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졸업도 걱정이다.

남편에게 자꾸 박사 한번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햇수로 4년이 되어가지만 그만큼의 숫자가 믿어지지 않는다. 




박사과정은 2019년에 시작했지만 그동안 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한층 더 다양해진 취미와 독일에서 살아남는 요령 정도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테니스도, 베이킹도, 수영도 배웠지만 정작 중요한 지식과 독일어실력의 발전은 어느 정도로 늘었을까. (여담이지만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살아남으려면 운동은 필수인 것 같다. 목과 어깨로 오는 통증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독일에서 코스웍도 없는 박사과정을 밟아가며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물었던 기간이 1년이 넘었던 것 같다. 독학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려면 누구에게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고이 접고 스스로 헛발질이라도 해봐야 뭐가 좀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 동료 박사과정생들도 1년이 넘었는데 논문 진전이 없어 보인다. 코스웍도 없는데 도대체 1년 동안 뭘 했니? 물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안다. 시간 진짜 빨리 간다.. 컨퍼런스나 워크숍에서 발표 몇 번 하면 벌써 몇 달이 흘렀고 주제 하나에 꽂혀서 책 좀 뒤적이다 보면 또 1년이 금세 지나간다. 심지어 나처럼 장학금을 받는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라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라면 그것 때문에 논문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적어졌을 테지. 아무튼 나는 이제 좀 독일에 적응했고, 이곳에서 박사생활을 하는 것에도 조금 감이 잡혔지만 생각해 보니 장학금이 내년까지라고 한다. 


속도를 내며 논문작성에 정진하려고 하지만 해야 할 다른 과제들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머릿속에 해야 할 과제 리스트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졸업 전에 독일어 실력을 늘려야 할 필요성도 느껴 독일어 공부도 과제 +1으로 추가되었다. 박사과정 초반에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면 지금은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지지만 그걸 다 해낼 시간이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아.. 5년이 생각보다 짧다. 박사를 마치는데 10년이 걸린 분들이 이해된다. 


2019년의 나는 박사과정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가끔 보게 되는 졸업을 코앞에 앞둔 박사과정생을 보면 막연한 느낌만 들었고, 저만큼 공부했으면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줄 알았다. 마치 10대의 내가 30대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처럼.. 물론 지금도 내가 언제 박사를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다만 데드라인이 조금 더 뚜렷해졌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완벽한 논문을 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챕터 하나의 초안을 끝내도 다시 뒤엎고 새로 쓰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고는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박사논문은 평생 써도 완성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한계를 인정하고 데드라인에 최대한 맞춰서 쓰자고 결심하곤 한다. 포기는 김치 셀 때에만 쓰는 게 아니라 논문 쓸 때도 필요한 건가보다.


내가 가는 길의 방향성과 성취감, 그리고 연대감을 잃어버릴 즈음엔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기운을 받아오고는 한다. 내가 지금까지 한 연구를 발표할 때는 그래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곤 한다. 같은 길을 가는 연구자들을 만나서 정보를 교류하고 네트워킹을 하며 앞으로 내가 갈 길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했는데 이제 박사과정의 끝자락에 무엇이 남을지 고민하는 기간이 되자 현실적인 걱정이 시작된다. 위기감을 느끼며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본다. 과연 내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누구든 자기 밥숟가락 하나 놓을 자리는 있다던데 나도 있겠지..라는 막연한 위안에서부터 최악을 상상해보기도 하며 앞으로의 나날을 조금 두려워하기도 해 본다. 무기한으로 보장된 직장이 내게도 생길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눈앞에 닥친 과제가 우선이다. 허점투성이의 논문을 고쳐가며 그 옆에 산적한 나만의 프로젝트들에도 곁눈질을 하면 또 내일 걱정을 내일 해야지, 하며 걱정도 미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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