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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pr 12. 2022

우리들의 칠순

내가 이런 대접받아도 되능겨? 내가 잘 살아옹겨?

성여사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상석에 얼릉 앉으라는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의 재촉에 성여사는 어색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큰 맘먹고 바꾼 새하얀 거실 창호 앞 상석에 다소곳이 앉은 성여사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변했다. 희끄무레한 눈동자가 핏줄로 가득차고 그 주위로 가득 차오르던 눈물은 마치 일촉즉발의 댐처럼 출렁거렸다. 급기야 빳빳한 피부의 볼 위로 가득 뭉친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번 터진 댐은 멈출 줄을 모르고 흘렀다. 성여사의 엉엉 우는소리는 무너지는 댐의 우르릉쾅쾅 소리처럼 커다란 울림이었고 그 울림은 나를 떠나지 못했다. 어찌 그 울음을 떠나보낼 수 있으랴.


 마치 전염된 듯 나의 눈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따가웠다. 안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눈을 진정시켰다. 다시 거실로 나와서 누나를 쳐다봤다. 살갑지 못한 누나도 애써 감추려 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이내 포기한 듯 주르륵 주르륵 울고 있었다.  좋은 날 왜 우냐고 크게 소리치며 놀리는 나도 어느새 울고 있었다.


"내가 이런 대접받아도 되능겨? 내가 잘 살아옹겨? 어찌다 칠십이나 먹었댜..어찌 하오려..잉?"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과 같은 성여사만을 위한 자리가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입을 악 다물고 살아오느라 노홍철 못지 않은 하관이 되어버린 성여사는 식당일, 노가다일, 온갖 험한일을 하며 살아왔다. 칠순인 지금까지도 요양보호사일을 하신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며 하나뿐인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다. 초등학생 시절의 성여사는 유독 산수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공부 얘기만 나오면 내가 주판하나는 기가막히게 했다는 얘기를 하고는 한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성여사는 엉엉 울며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할머니에게 자그마한 입으로 토해냈단다. 생활력강한 고 이봉이 할머니라도 삼촌과 성여사 둘 모두 공부를 시킬수 없다는 사실을 정답처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지금의 칠순 날처럼, 엉엉 울고 있던 성여사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있었다.


"학교가 그렇게 좋아? 학교에서 일해볼래?"


 아직도 성여사는 학교 얘기만 하면 학교가 좋아서 학교에서 잡일을 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는 한다. 만약 우리 똑똑한 성여사가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갔다면 성여사의 지금은 어떠할까.


 할머니와 성여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자란 삼촌은 중학교, 고등학교 전교회장을 역임하며 sky중 하나의 대학에 입학했다. 이 후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에 영화라면 뭔가 순탄하지 않겠지. 허나 할머니와 성여사의 삶은 영화가 아닌데 영화처럼 되어 버렸다. 대학생의 삼촌은 한 여자를 만났고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를 중퇴했다. 성여사의 삶에서 삼촌을 빼놓을 순 없지만 삼촌 이야기는 이 글에서 네 줄만 할애하겠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성여사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누나도 나도 울었다.  어설프고 귀엽게 붙여놓은 해피벌스데이 풍선이 마치 유치원 졸업식 같았다. 성여사는 유치원생처럼 엉엉 울었다. 최근 들어 성여사가 나에게 과거의 많은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지만 내가 모르는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성여사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칠십 살이 되도록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지 못했던 성여사가 자식들의 조촐한 칠순 생일상에 봇물 터지듯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를 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픈 손가락도 떠올렸을 성여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웃프다. 


우리들의 칠순은 이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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