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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Sep 19. 2023

도서관은 멀지만 일주일에 60권 읽습니다

단 한번의 사교육없이 내년에 중학생이 됩니다





 살이 에일 듯 추워도 살이 익을 듯 더워도 때가 되면 가는 곳이 있다. 도서관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도 우리는 그곳을 다녀온다. 결군의 도서관 주기는 2주일이다. 2주일마다 편도 20킬로미터 거리의 여주도서관으로 향한다. 이제는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은 듯 다녀오지만, 인프라가 넘쳐나는 도시라이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양평으로 귀촌하기 전, 우리가 살던 산본에서는 걸어서 5분거리에 도서관이 있었으니 말이다. 양평사람이 왜 여주도서관으로 다니냐고? 우리 집은 여주와 양평의 경계에 위치했다는 지정학적 이유도 있겠거니와 양평도서관에는 책이 별로 없다는 양적인 이유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올해 말에 엄청난 디자인(?)으로 새로 개관하는 양평도서문화센터를 결군은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 규모가 크면 채워질 책들도 많을테니.



 시퍼런 이케아 쇼핑백에 30여권의 책이 딱 들어간다. 우리는 한 번 갈때마다 딱 30권의 책을 빌려온다. 엄마, 아빠, 결군, 가족회원으로 똘똘뭉치면 1인당 10권씩 총 30권의 대출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책을 고르는 데에만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결군은 소설 그리고 재밌게 설명된 과학책을 좋아한다. 해리포터의 찐팬이기도 하다. 몇 달전부터 쓰고 있는 결군의 판타지 소설이 매우 궁금하지만,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원고가 완성되면 해리포터의 출판사인 '문학수첩'에 원고를 보내겠다는 큰 포부도 갖고 있다. 결군이 선호하는 책으로 보자면 어린이도서관에서는 거의 다 읽어서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6학년 초부터는 성인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30권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책은 나의 검수를 통해 선택되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초6학년이 보기에는 자극적인 내용들이 책 곳곳에 숨어있다. 얼마전부터 여주도서관 청소년 태그가 붙혀진 책들만 따로 모아놓기 시작하면서 책을 고르는 일이 용이해졌다. 새로운 책들을 차에 가득 싣고 집으로 향하는 결군의 얼굴이 편안해보인다. 밥을 먹으며, 똥을 싸며, 양치를 하며, 책을 들수 없는 시간들을 뺀 모든 시간들 속 결군은 책을 들고 있다. 그렇게 결군은 2주동안 글밥 많은 책들 30권을 소화해낸다. 신기할 정도로 오랜 시간 책을 붙들고 있다.



 결군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흠. 중학생이라니. 여느 부모처럼 '얘가 중학생이 되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결군은 말랑말랑한 품속의 어린이같다. 칠순을 갓 넘긴 성여사(엄마)께서 마흔을 훌쩍넘긴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겠지. 유치원 때부터 지금의 6학년까지 함께 지내온 결군의 예닐곱 친구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어떤 친구는 해외로, 어떤 친구는 여기서 차로 20분거리인 양평읍으로 이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이곳에 왔고 또다시 아이의 교육을 위해 떠난다. 입시를 위해서는 공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는 정답처럼 보여진다.


 나의 의지는 갈대와 같다. 대세의 바람에 이리 저리 줏대없이 흔들리고는 한다. 앞으로 결군이 다닐 중학교는 주변에 제대로된 학원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공교육의 빈자리를 사교육으로 채우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다. 내가 운영중인 양평읍 코딩교습소의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6의 아이가 학원을 통해 중2과정을 학습중이고, 중2의 학생은 고1의 과정을 학습중이라고 한다. 초등과정에는 한글을 초1에 배우지만 유치원 시절에 한글을 모두 배운채로 와버리니 정규과정대로 온 아이는 어리둥절하다. 안전하게 한 계단씩 오르는 것 보다 위태롭게 두세 계단씩 오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미래를 향해서만 앞다투며 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어디까지 앞서가야 하는 것일까.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몇 계단씩 앞서가지 않으면 불안해하지 않을까. 나는 결군에게 그 사교육을 시켜주지 못해서 흔들린다기 보다는 그 틈바구니에서 혼란스러워 할 결군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날 뿐이다. 물론 사교육을 시켜줄 여유도 넉넉하지 않다. 


생각이 많은 요즘, 다행인것은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있는 아내가 중심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중학생 결군, 괜찮겠지?"

"때가 되니 한글도 잘 배웠고, 선생님이 내 주시는 숙제 잘 해가고, 자존감 든든하고,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고, 독서가 취미인 아이인데, 안 괜찮겠어?"


그래, 그거면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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