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보고 있다.
20세기 절망적인 사건이었던 홀로코스트는 필자의 리뷰에서 계속 말해왔듯이 많은 소재로 사용되었다. 역사를 다룬 많은 영화는 대부분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혹은 기억하기 위해서 제작되곤 한다. 그러나 영화의 상업적 목적을 무시할 수 없으며, 심지어 고통과 상처를 자본화하기도 하는 매체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아이히만 쇼>에서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행정장교였고, 유대인 학살을 승인한 책임자이기도 했다. 필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서적을 통해 아이히만을 접하게 되었고, 아이히만이 갖고 있었던 악마성 즉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알게 됐다.
아렌트는 흔히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아이히만의 악마성에 주목했다. 그녀는 나치의 만행 속에서 학살이 이뤄지는 과정 속의 부속 역할을 한 아이히만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관료제 안에서 벌어지는 악의 합법성, 선악의 윤리적 기준을 제쳐두고 합법성이 학살을 당연하게 진행시켰음을 지적한다. 학살을 허가하는 행정적 승인은, 물리적으로 학살을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료적으로, 행정적으로 그들의 학살행위를 합법적 행위로, 더불어 신의 심판으로 승격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히틀러의 독재와 그들의 만행을 긍정한 것은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독일의 대략 90% 이상의 교회들은 정부에 힘을 싣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히만이 법원에 출두했을 때, 그의 모습을 악마와 같은 모습이나 비열한 모습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신사답고 깔끔한 외모였다. 마치 옆 집에 사는 친절하고 자상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은 자기 역할에서 할 일만 했을 뿐이라 말한다.
관료제 속에서 자라는 이 악마적 요소는 관료제 속의 적법성 속에서 자라난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현재 우씨와 아이히만의 입장을 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청문회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양심의 문제가 아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리한다. 악의 평범성은 선악의 대치 구조가 아닌, 오히려 우리 삶을 이루는 곳에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악의 모습을 일컫는다. 어느샌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함이 덮어 씌우기 시작했다.
필자의 글 "청와대로의 우병우" 중에서...
영화 <아이히만 쇼>는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학살이라는 재앙과 같은 행위를 승인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담게 된 과정을 그린 영화다. 역사적 순간을 담으려고, 한 영화 제작자 밀턴 프루트만(마틴 프리먼)은 공산주의자로 오명을 얻었지만 최고의 감독인 레오 허위츠(안소니 라파글리아)에게 촬영 요청을 하고, 이스라엘 재판장의 상황을 녹화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레오는 생존자들의 상처 입은 증언들을 들으면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아이히만을 주목한다.
그는 112명의 생존자들의 증언에도 말한다. "자신은 지시받은 그대로 행동했다.", "자신은 기계 속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촬영팀은 그런 아이히만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심지어 학살과 학대의 영상까지 공유했음에도 아이히만의 표정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보고 있다.
레오는 유대인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분노의 대상으로서의 파시즘에 눈을 두지 않았다. 그는 '상황이 주어지면 누구든 파시즘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레오가 말하는 파시즘이란 이렇다.
"우리가 다른 이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코 모양이나 피부색이나 신을 섬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증오해선 안됩니다. 아이히만처럼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이게 되니까요. 이 끔찍한 만행들도 모두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요즘같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정보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파시즘을 갖고, 누구에게나 차별과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행동 그 자체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기도 한다.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은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모든 언행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 아니 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태. 우리는 그 상태를 벗어나려 끊임없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새롭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