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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17. 2020

창고에서 오열하고 받은 오퍼레터

드라마틱하게 시작된 스타트업 라이프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으로 사회생활 10년 만에 회사에서 오열을 했다. 난이도 최상의 파트너와 통화를 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꽤나 좋은 인하우스에서 일하는 마케터였지만 마치 대행사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콜라보레이션은 '협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갑과 을이 생기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을'이 되어 '갑'의 요구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은 나는, 그날 오후에도 깐깐하고 무례한 상대의 전화를 억지로 받은 상태였다. 어차피 들어줘야 할 일인데 왜 그렇게 '네' 하기가 싫은 건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에서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알아본 뒤 제안한 것인지는 생각도 안 하고 일방적으로 쏘아대는 상대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귓불을 때린다. 결국 통화 도중 울음이 터졌다.


회사에서 우는 게 제일 프로 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이런 날이?


눈물을 부여잡고 곧장 창고로 직행했다. 내 앞에 앉아있던 후배는 갑작스러운 나의 오열에 놀라 내 뒤를 따라왔고, 나는 쌓여 있는 박스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작정하고 울었다. 이 콜라보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 잘하고 싶어서 애썼던 마음이 한순간에 내 눈물샘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소리를 죽일 수도, 눈물샘을 잠글 수도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오열하고 있을 때 평소 나에게 늘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시는 홍보팀장님이 조심스레 들어와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내가 이 꺼이꺼이의 주인공이라는 게 너무 놀랍다는 이야기에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건지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자리에 돌아와 나를 울게 만들었던 상대가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본 뒤 후배를 통해 피드백을 전하고 짐을 싸서 나왔다. 길고 긴 하루, 드디어 퇴근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무심코 들어간 네이버 메일. 운명처럼 한 메일이 눈에 들어온다.



오퍼 레터라는 제목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온건가! 사실 이런 메일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착한 이 메일이 나를 이 모든 상황에서 구해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1차 면접 - 과제 - 2차 면접으로 이어진 모든 전형에서 '최종 합격' 했다는 CFO의 메시지는 눈물을 쏙 뺀 하루를 다 잊게 할 만큼 엄청난 위로가 됐다. '주님 감사합니다!' 소리를 되뇌며 집으로 향하는 길,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오퍼 레터는 최종 합격 소식에 더해 회사가 내게 제시하는 연봉과 인센티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헤드헌터를 통해 연봉을 네고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른 스타트업들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회사가 채용에 임하는 태도, 구성원을 합류시키는 방식이 좋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곳'이라는 확신과 함께 얼른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받은 내용을 더 따져보지 않고 회신을 보냈다.


곧 새로운 사옥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채용 과정에서 고용주가 될지 모르는 회사로부터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간절해서 그런 무례함을 견뎌야 했던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 몇 곳의 회사에서 '압박면접'을 명분으로 기분 나쁜 질문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질문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아직 채용되지도 않은 이들에게 그런 태도라면, 입사한 뒤에는 상상이 가지 않는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오퍼 레터를 받고 한 달이 조금 지나 나는 지금의 회사에 합류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구성원들의 맨파워를 믿어주는 곳, 구성원들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시기, 나와 회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제대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조급한 마음은 버리고 신중하고 스마트하게 말이다.


나의 스타트업 라이프는 이렇게 반전 드라마를 쓰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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