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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Mar 08. 2020

너, 그래도 생선은 먹는 거지?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두 번째 질문

쨍한 초록 바탕에 흰 점이 다닥다닥 박힌 플라스틱 쟁반 위. 살아있는 세발 낙지를 가위로 잘게 잘라 올리는 빨간 고무장갑 낀 두 손은 날렵하다. 댕강 잘린 다리들이 정신없이 꿈틀대는 위로 참기름을 듬뿍 뿌리고, 한 귀퉁이에 초장을 넉넉히 곁들인 접시가 노란 머리를 한 남자 앞에 놓인다. 젓가락으로 어렵게 뽑아낸 다리들을 입에 넣는 그의 얼굴은 심각한 질문을 받은 듯 굳었다. 질겅질겅 열심히 움직이던 턱이 멈추고 힘겹게 꿀꺽 다리를 삼키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렌즈를 보는 남자의 눈.


화면이 멈추고 영상을 보여주던 독일어 강사의 눈이 곧바로 나를 향한다.


"너도 이렇게 살아있는 낙지를 먹어봤어?"

"응,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당연히 먹어봤지."


그녀의 이마가 꼬물거리는 세발낙지의 다리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제 먹지 않아. 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거든."

"너, 그래도 생선은 먹는 거지? 한국인들이 해산물을 (생으로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안 먹을 수가 있어? "

"아니, 더 이상 먹지 않아."


가감 없고 단도직입적인 강사의 질문과 깔끔한 내 답변이 수업이 끝난 후에도 생각의 꾸러미 안에서 튕겨 다녔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멈췄지만 이번엔 머릿속에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해산물 먹지 않은 거지?


캔 음식을 멀리 한 뒤로 (내가 더 이상 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 참치를 몇 년간 먹지 않았다. 한 번 어떤 결심을 하고 나면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 식단에 제일 잘 나타나는데, 그래서인지 참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러다 유럽에 와서 마트 선반에 놓인, 유리병에 옴팡지게 들어있던 참치 살점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병이 꽤 비싸기도 했고 그리웠던 음식도 아니어서 사 먹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을 초대해 김밥을 만들기 위해 그 유리병에 든 참치를 사서 요리를 했다.


그 날 저녁 고소한 참치살을 먹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내가 왜 이 맛있는걸 그만 먹는다고 했을까 생각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 내 뱃속을 채운다는 점이 내 안에 강한 반작용을 일으켰지만, 생선은 그런 느낌이 거의 없었다. 유리병에 든 참치도 있겠다, 물고기는 고통도 못 느낀다는데 내가 해산물을 안 먹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어는 단백질부터 영양소도 풍부하다는데, 고기 대신 해산물을 먹으면 페스코 테리언으로 채식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남편을 만나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나고 자란 내 남편은 해산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연어를 제일 좋아했었다. 우리가 처음 연애할 때만 해도 데이트 메뉴로 그는 항상 연어를 택했다. 집에서 밥을 할 때도 선분홍 빛 자태가 고운 연어 살을 사다가 오븐에 넣어 굽기도 하고 생으로 먹기도 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에 일부러 멀리 있는 해산물 시장까지 가서 장을 봐오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양 생태계와 전 세계 해산물 오염 및 착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끊은 게 연어였다.


전 세계 연어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연어의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계속 커지는 우리의 수요에 맞춰 엄청난 양의 연어를 공급하는 건 세계 연어 공급 1위 회사인  'Mowi (모위)'다. 이 노르웨이 계열 회사는 대서양에서 일 년에 40만 톤 이상의 연어를 잡는데 그 양이 다른 어떤 회사보다 많다. 최근 이 'Mowi'가 운영하는 대서양의 연어 양식장에 쓰이는 화학물질에 대한 기사가 났다. 6백만 톤 이상의 약을 양식장이 있는 바다에 뿌린다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화학물질을 써야 하는지 궁금했다.


연어는 강에서 나서 바다로 나가 자라는데 넓은 바다를 누비며 크는 만큼 활동량 많고, 그래서 우리가 먹으면 "건강"하다고 알려진 생선이다. 그런데 이런 종의 생선을 양식하면서 일정한 공간에 가둬놓고 키우면 '바다 이'라고 불리는 기생충이 큰 문제가 된다고 한다. 이 기생충은 연어의 생명에 치명적이다. 1kg 정도의 연어에 10마리만 붙어도 연어가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연어가 양식장 안에 갇혀 이런 해충들에게 먹혀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항생제를 쏟아부어야만 값어치가 어느 정도 나가는 연어를 착취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양식 연어를 우리는 비싼 돈을 주고 먹고 있는 것이다.

'바다 이'로 뒤덮인 양식 연어 (출처: BBC)


뿐만 아니라 계속 오르는 수요 덕에 더 많은 양의 연어를 잡기 위한 회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어 공급은 계속 줄고 있다. 노르웨이에 있는 양식장에도 양식 연어에 붙어살던 '바다 이'가 근처 야생 연어들에게 까지 옮았다고 한다. 양식 연어의 문제 때문에 도리어 자연산 연어의 수도 점차 줄 수 있는 셈이다. 연어가 제일 많이 나는 곳이 대서양과 칠레 근처 남태평양인데, 대서양에서 나는 연어의 공급은 지난 약 20년간 줄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연어를 수출하는데 그곳도 같은 양식 연어의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대서양 연어 공급 증감 1991 - 2017


연어가 아닌 참치의 경우엔 세계자연기금에서 이미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많은 착취를 당해왔다. 참치 수가 극도로 줄은 건 지속 가능하지 못한, 비윤리적 남획 때문인데, 그것도 역시 늘어나는 참치 수요에 맞춰 가격이 오르니 더 큰 이익을 위해 기업들과 어업자들이 불법 착취도 서슴없이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을 원하기만 했지 그 순간의 즐거움을 싼 값에 즐긴 뒤엔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찰나의 행복을 위한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부터, 그때부터 나는 생선을 먹지 않게 되었다.


양식 산업과 해산물 남획의 문제 이외에도 수은이나 미세 플라스틱 등 많은 문제는 차근차근 다른 글에서 알리고 싶다. 그리고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바다가 주는 그 깊고 맑은 맛을 즐길 수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다시마와 미역 같은 해조류만으로도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마를 듬뿍 넣은 건강한 채수를 만들거나 미역을 넉넉히 넣어 얼큰한 면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해산물을 식단에서 배제한다고 하면 못 먹는 게 너무나 많아질 것 같지만 사실 해양 환경을 지키면서도 넉넉하고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잘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생선은 먹지?'라는 질문에 '생선 아니더라도 더 많은 것을 먹고 살며 그래서 행복하다' 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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