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채식*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어쩌다가 어물어물 채식의 길에 접어든 건 아니다. 나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과 반문, 반성과 고심을 재차 되뇐 후에야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정 후에도 끝없는 시행착오와 배움으로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을 다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하고 먹는 것들이 채식의 예시일 뿐이지 어떤 표본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채식을 하는 주변인이 많이 없다 보니 이제 막 비건에 대해 알아가는 동료들이 내게 비건에 대해 자주 물어본다.
코로나 때문에 10월까지 재택근무를 하게 된 우리 회사 동료들은 요즘 집에서 밥을 하고 서로 사진과 요리법을 나누는데 한창 열이 올라있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으며 식단을 짜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부쩍 비건 요리법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동료들도 많아졌다. 비건을 실천해 보겠다고 결심을 한 동료가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둘이나 됐다. 그 동료들이 비건식을 시작하기 전 내게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비건이 되기 전에 뭘 유의해야 해?”였다.
마치 고공낙하 체험을 하기 전 모든 장비를 체크하는 것 같은 질문이지만, 채식을 하기 전 많은 것을 고려하고 내게 정말 맞는지 알아본 뒤 시작하는 게 좋다.
재료의 제한 보다 생활의 전환이 먼저다.
맹신은 금물, 채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채식이 건강에 좋은 건 백번 맞다. 그건 수많은 연구 결과들 뿐만 아니라 내가 겪은 내 몸과 마음의 변화들로도 충분히 알 수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건강 관련 문제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식단뿐만 아니라 식습관까지 바꾸어야 건강한 채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자튀김도, 과자 오레오도 식물성 식품이다. 채식 라면도 나오는 요즘 다양한 채식 가공식품을 구매해서 식단을 꾸리기 쉽다. 하지만 기존의 식습관에 따라 채소와 과일, 통곡물이 없는 식단을 먹는다면 채식을 해도 득을 보기 어렵다. 특히 건강을 위해서 시작하는 채식이라면 이런 가공식품을 피하고 신선한 재료를 먹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채소와 과일이 몸에 더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채식 가공식품은 맛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조미료나 향신료 같은 식품 첨가제를 불필요하게 더 넣었을 수도 있고, 설탕이나 소금을 더해서 간을 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식을 할 때엔 내 모든 생활 습관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쉽고 빠르게 먹는 가공식품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독일은 워낙 채식 인구가 많아서 시중에 나온 비건 제품이 정말 많다.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는 비건용 크림치즈부터 ‘채소’ 스프레드까지 다양하게 나오는데 내 동료 중 한 명이 내게 추천해 줄 만한 제품이 있냐고 물었었다. 나는 그런 제품을 사 먹는 일이 너무 드물어서 대신 내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캐슈넛 ‘크림치즈’ 요리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집에서 해 먹는 요리가 하나둘씩 늘 수록 건강이 좋아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건강한 맛이 아니라 새로운 맛이다.
치즈는 치즈고 고기는 고기다.
비건이 되기 전 내가 가장 꺼려한 점도 바로 대체’ 육’을 찾으려는 이들과 그런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에 있었다. “아니, 고기를 안 먹을 거면 아예 먹지 말지 왜 밀고기니 콩고기니 맛도 같지 않은 걸 따라 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고기를 먹으면 되잖아?”라는 말을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 내뱉은 적도 많다. 자연스러운 걸 두고 억지로 노력하는 게 답답하게 까지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건 치즈와 고기의 맛을 쫓을 때나 하는 말이다.
우리 남편은 채식인도 아닐뿐더러 치즈 없이 못 사는 사람이다. 내가 만든 요리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든든한 지원자지만 내 비건식 ‘치즈’는 치즈가 아니라고 확실히 말했었다. 그 말을 듣고 아쉽다거나 슬프지 않았다. 나 역시도 캐슈넛과 해바라기씨 등 견과류와 영양 효모를 섞어 만드는 요리가 치즈와 같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요리를 만드는 이유는 치즈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하기 위해서이다. 비건이 되지 않았다면 내가 캐슈넛을 갈아서 쓸 생각도 못해봤을 것이다.
병아리콩가루와 검은 소금을 섞어서 계란을 대체하고, 밀고기를 만들어 먹으면서 나는 그 맛을 흉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롭고 편안한 맛을 찾는다. 비린내가 나는 계란이나 피가 흥건한 고기 대신 고소하고 담백한 비건 오믈렛을 만들면 무언가 새로운 요리를 발견한 기분이다. 된장을 섞어 넣은 밀고기에 고추장과 토마토 양념을 곁들여 볶으면 전혀 몰랐던 감칠맛에 푹 빠지게 된다. 비건이 되려면 맛의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애틋한 입맛 팔레트 (palette)가 생긴다.
왜 동물을 행복하게 잘 키우면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고 믿을까?
고민의 영역이 넓어진다.
네덜란드에서 다니던 회사 워크숍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나열하고 순서를 매기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순서에 맞게 살면 스스로의 삶을 헤쳐나가면서 힘이 든다기보다 보람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게 목표였다. 자산, 가족, 모험, 예술, 자아 등 수많은 가치들 중 나는 ‘건강’을 목록 제일 꼭대기에 거침없이 썼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돌아보며 먼 산을 쳐다보는 사이 나는 너무나 쉽게 내 가치를 적어냈다.
건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디가 크게 아파서였다기 보다, 건강하지 않을 때 겪는 사소한 듯 끈질긴 불편함이 끔찍하게도 싫어서였다. 얼굴에 솟아오르는 두드러기부터, 간지러운 손가락 사이, 불편한 속, 푹 쳐지는 기분까지 무언가를 잘못 먹었을 때 오는 부산물들이 내 삶을 너무 많이 방해했다. 예민한 탓에 누구보다 건강에 몰두하면서 비건이 되었는데 그 후 수많은 가치들이 내 일상생활에 들어왔다.
처음은 환경이었다. 우리의 생활 방식 하나하나가 얼마나 이 지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니 끝도 없었다.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인간 따위가 지구의 앞날을 걱정한다니,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지구는 45억 년을 넘게 존재한 지구는 훼손되는 게 아니라 훼손하는 겁니다. 인간의 존재를 언제든지 쓸어 없애겠다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거지요.”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굶어 죽는 북극곰, 플라스틱을 먹는 거북이를 보여주며 어깃장을 놓는 지구에게 ‘내가 다 잘못했소,’라고 두 손 들고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생활 쓰레기를 줄이는 활동에 눈을 돌리자 동물의 권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 입의 즐거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소들을 생각하는 게 힘이 들었는데, 잠시 살았던 독일의 한 도시인 Ulm의 동물원에 갔을 때 털을 빗으로 빗겨줄 때 눈을 지그시 감던 돼지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삼겹살을 봐도 그냥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죽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유기농 친환경 방목 농장에서 잘 먹고 잘 산 동물이라고 해도 죽음 앞에선 모두가 두려운 게 당연하다.
이렇게 한 가치를 보고 시작한 비건 생활 목록에 더 많은 가치가 추가될 수 있다.
북아프리카와 발칸 지역에서 많이 먹는 메쩨 (mezze)
예전의 나를 잃고 새로운 나를 얻는다.
유럽에 처음 살면서 어려웠던 게 생 허브였다. 바질은 어떻게든 먹겠는데 생 파슬리, 딜, 세이지 등 처음 보는 풀들의 맛이 너무 강했다.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시엄마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에게 “파슬리 좋아해?”라고 묻는데 차마 “파슬리는 별로…”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있으면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생 파슬리를 잘게 썰어 잔뜩 넣은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어주셨다. 그냥 못 먹는다고 할 걸, 억지로 향이 강한 그 요리를 다 먹으면서 다들 이 허브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차차 나도 그 맛을 알게 되고 새로운 입맛을 찾게 되었다. 세이지는 올리브유에 살짝 튀기듯 구워서 호박 요리에 올리면 정말 맛있다는 걸 배웠고, 화장품 맛이 난다며 싫어하던 고수도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파슬리도 토마토가 들어간 따뜻한 채소 수프에 올려 먹으면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허브의 장벽을 깨고 나자 이 땅에 정착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좀 더 생겼다. 입맛이 넓어지니 내 삶의 반경도 조금 커진 느낌이 들었다.
허브뿐만이 아니라 향신료의 세계에도 눈을 떴다. 채소는 내가 알던 흔한 간장, 된장, 참기름, 고춧가루 등으로만 맛을 내서 먹었었는데 채식을 하니 맛을 낼 수 있는 선택지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배웠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암추르 (amchoor) - 초록 망고를 잘라 말린 가루’, ‘라스 알 하눗 (ras el haout) - 북아프리카에서 많이 먹는 향신료 믹스’, ‘수막 (sumac) -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빨간 열매의 향신료’ 등 다양한 대륙과 문화에서 쓰는 향신료를 써보면서 얄팍했던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 바뀌었다.
여러 나라에서 나고 자란 우리 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도 채식을 하는 게 정말 큰 한몫을 했다. 인도식 향신료인 힝과 가람 마살라 (garam masala)를 써서 커리를 만들었다며 인도에서 온 동료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말린 라임에 대한 이야기로 중동 지방 동료와 그 지방의 요리에 대해 한참을 떠들기도 했다. 채식을 하고 내가 알고 자란 경계선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비건이 된 후, 나는 조금 더 성장했고 그로 인해 조금은 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저는 채식과 비건이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식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브런치에 쓴 제 모든 글에서 쓰인 채식은 비건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