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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조 Apr 07. 2016

퇴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회사나 회사 사람이나.

꿈은 현실이 된다.

어른이 되면서 요즘 더 크게 와 닿는 말이다.




퇴사를 마음먹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지금 내가 별 일 없는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회사 사람들은 당혹감과 그에 맞는 여러 추측을 할 테니 말이다.

'그만둬야 되는데...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지?'

'이 참에 조금 더 버텨봐?'

하는 생각으로 하루씩 하루씩 퇴사의 시일이 늦춰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회사는 또다시 나를 다른 소속으로 발령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불쑥 찾아온 인사발령 소식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냥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상상한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는구나,

내가 이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게 하늘이 도와주는가 보다 생각했다.


가족들은 나의 퇴사에 대해 그 전부터 함께 고심해 왔는데

이번 일로 쿨하게 만장일치로 그만두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상사는 내가 홧김에 말한 거라 생각했는지 흘려들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난리가 났다.

평소에는 말도 한마디 잘 안 하는 선배가 찾아와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를 설득했다.

이렇게 그만두는 것은 정말 아니라며

왜 이때껏 고생해놓고 이렇게 쉽게 포기를 하냐고 안타까워했다.

자기도 젊을 때 힘든 시절이 있었고

그것만 지나면 또 순탄한 길이 펼쳐진다고 단언했다.

원래 인생이란 것이 오르막길이 있어야 내리막길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맞는 말만 해주었다.

지금 내가 쉬어보지 못해서 그렇지

막상 회사를 그만두면 그곳은 암흑과 같은 현실이라고 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곱게 자라다가

밖으로 나가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순간들이 많겠냐고.

남들은 바쁘게 출근하고 있는데

나만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고

한순간에 뒤쳐질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선배는 돈을 안 벌면 요즘 같은 세상 평범하게 살기 힘들다고 했다.

돈 때문에라도 다녀야 한다고.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무시 못한다고.


정말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조언을 해주니 참 고마웠다.

회사생활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예상해 본 부정적인 미래였지만 퇴사시 좋은 것만을 계속 생각해오던 나에게

인생 선배의 조언은 나를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선배의 말을 경청했고 마음으로 다시 세기며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여 보았다.

순간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는

머리가 아닌 마음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상과 리얼 현실 사이에서 혼돈하고 있을 때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맡은 업무가 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간다고

상사에게 말하라는 게 선배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 이 사람들 또한 회사 사람이구나.


깨달았다.

회사 동료들은 나와 함께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그들에게 지금 내가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간곡히 말렸나 보다.

회사라는 곳이 결국 이런 곳이라고

이제야, 떠날 때 알아버린 것이다.




근무시간 내내 듣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의 조을 듣고 나니 혼이 쏙 빠졌다.

집에 와서까지도 퇴사 후 부정적 상황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가올 즐거운 일들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오늘 주입식 조언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젠장, 듣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리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다.

한 명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자식이었고 한 명은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였다.

현재 놓인 상황이 나와는 달랐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이직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20대에 이 회사에 들어와 40대가 될 때까지 계속 그곳에서만 몸을 담고 살아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내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 다른 것에 도전하는 모험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나이였

회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그들과 달리

상상했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 놓인 상황이 다르니 퇴사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자의든 타의든 남의 말을 너무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가 참 얇은 나였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을 의식하기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연습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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