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조언과 내가 받아들이는 태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상담 좀 해주세요."
마음속으로 퇴사가 맞는 길이라고 결정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어떤지, 내가 잘한 결정인지 100% 확신은 들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미래의 길이 막막하게 또는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여러 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듣기로 했다.
아니 듣기로 했다기보다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처음은 대학교 동기였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좋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이직을 두 번 했고 얼마 전에는 출산을 한 친구였다.
6개월 쉬고 계약직으로 재취업을 했지만
쉬는 동안 너무 행복했고
근무시간 내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계획대로 임신이 잘 되었고
정상적인 출산과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기혼의 가임여성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직언했다.
지금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보건휴가, 연차수당 등의 권리들이
계약직이 되었을 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래도 내 친구는 지금 몸 건강하게 만들어서 아기를 가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것이라며 나의 퇴사에 긍정의 한 표를 던졌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임신을 했을 때
혹여나 아기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내 탓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내가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나의 아기가 아픈 것이라고.
그때는 되돌릴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건강부터 챙겨.
또 다른 대학교 동기는 나와 비슷한 직장에 취직했지만
곧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겼고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고 확답했다.
월급은 더 적고 야근하는 횟수는 늘었지만
그만큼 업무 강도는 낮아졌고 스트레스 또한 적어졌다고 했다.
나는 더 좋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취업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월급과 복지를 포기하면 마음 편히 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현재와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더 이상 이 회사에 목매고 아쉬워할 필요 없다고.
그동안 열심히 다녔으니 이제는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해.
두 번째는 회사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두 선배였다.
한 명은 다른 꿈을 찾아 퇴사 후 적성에 맞는 여러 일을 경험하는 중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회사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정보통이었다.
퇴사를 한 선배는 여러 취미활동을 하고 있었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 만큼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물론 건너 듣기로는 일하다가 안 하는 사람은 노는 것도 힘들다며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라고 들었지만
나의 물음에는 좋다고만 대답해서 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보며 많이 지쳐 보인다고 안쓰러운 눈빛만 보냈다.
분위기 메이커인 선배는 누가 봐도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배였다.
하지만 자기는 직장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고
이 곳에서 번 돈으로 운동도 하고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얼마나 좋냐며 평생 회사를 다닐 것이라고 즐겁게 말했다.
이 둘은 회사에서 지금 내게 큰 어려움이 없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체가 퇴사를 확신하지 못하고 내면의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니
그만두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나를 말렸다.
그만둘 때는 다른 무언가를 할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단지 쉬고 싶은 게 이유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라고 걱정 섞인 말을 건넸다.
아니면 회사를 계속 다닐 경우와 그만 둘 경우의 장단점을 글로 옮겨 적어 보면
마음이 더 기우는 쪽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복잡하고 뒤엉켜 있던 것들이
글로 정리되어 눈으로 다시 보면 판단하기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D-day를 정하고 퇴사일까지 모든 걸 내려놓고 다니다 보면 마음이 또 달라질 수 있다고.
그렇게 회사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는 선배들과의 한참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실 내 속은 후련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깊은 고뇌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현실에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자인가?'
그날 밤 나는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다음 날 판단했다.
그들은 회사로부터 항상 사랑을 받던 사람들이었고
지금의 근무환경이 좋은, 회사에 대한 걱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가 퇴사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대립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깊은 혼란에 빠진 게 아니었을까.
내가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오히려 내 속이 후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 마음과 무의식은 이미 퇴사를 결심했던 것이 아니었나.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많이 의지했던 동료와 상담을 했다.
그는 예전에 욱하는 마음으로 퇴사한다고 상사와 면담까지 끝냈지만
선배의 뼈저린 조언에 다시 마음을 돌린 경험이 있었다.
그는 지난 나의 회사생활을 가까이서 함께한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나의 퇴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며
앞으로 받을 고생의 대가를 맛보지 못함을 아쉬워하긴 했지만.
나로 인해 대리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삶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 제일 잘 맞았기에
그와의 상담에서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다.
그가 퇴사에 대한 부정적인 조언과 회사에 계속 다닐 경우 좋은 점을 말할 때면
나는 그에 맞는 반박을 힘차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 말에 수긍했고
그 정도면 회사를 그만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 생각이
이제는 남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게 제법 논리가 생긴 것이다.
(이외에도 친한 친구들과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나의 업을 잘 모르기도 했고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만 봐왔던 터라
모두 나의 퇴사를 응원해 주었다.)
이렇게 내가 여러 사람과 나의 퇴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느낀 점이 있다.
'내가 왜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사실 내 이야기를 너무 깊숙이 했나 후회도 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들에게 물어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미래를 그들로 인해 예견해보고
마음속으로 방어를 하기 위함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몰려오는 아쉬움과 후회,
또 다른 힘든 현실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을 일종의 마음 연습을 한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퇴사를 결정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내 마음을 다잡아 줄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안의 소리를 쫒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