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누드모델〉에 대하여
연인 사이인 마리안느와 니꼴라는 그림 수집가와 함께 화가 프레노페르의 집에 방문한다. 약속을 까먹은 프레노페르 대신 아내 리즈가 그들을 맞이한다. 뒤늦게 도착한 프레노페르는 기다리던 이들과 함께 화실로 간다. 프레노페르의 그림들을 보며 10년 전에 미완성한 작품 〈벨 느와죄즈: 아름다운 싸움꾼〉를 이야기한다. 프레노페르는 아내인 리즈를 뮤즈로 삼아 그림을 그렸으나, 지쳐서 느와죄즈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완성인 느와죄즈를 아까워하며 니꼴라와 그림 수집가는 마리안느를 모델로 그릴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마리안느에게 묻지도 않고 그녀가 모델 일을 할 거라고 느꼴라는 수락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안느는 니꼴라에게 ‘아무리 걸작이어도 내 대신 말할 순 없다’며 자신을 팔았다고 느낀다.
다음 날 아침 스스로 화가의 집에 찾아간다. 화실에서 오랜만에 그림 그릴 준비를 하는 프레노페르는 물건의 위치와 의자를 몇 차례 바꾸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별다른 대화 없이 스케치를 하고 '건질 게 없다'며 첫째 날 작업을 마친다. 마리안느는 화실에서 나와 리즈에게 괜한 시간 낭비라며 자신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리즈는 그녀를 설득하며 작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마리안느는 니꼴라에게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내일도 작업할 거라고 한다.
다음날 프레노페르는 마리안느의 자세를 격하게 바꾸며 인형처럼 다룬다. 프레노페르는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마리안느를 잘게 부수고 해체시켜 그 안에 남는 것을 그릴 거라고. 둘째 날 작업이 끝날 즈음 니꼴라는 불안한 감정이 들어 마리안느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하지만 마리안느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니꼴라-마리안느, 리즈-프레노페르 사이에 어긋난 감정이 보인다.
그림을 그린 지 셋째 날, 마리안느는 스스로 자세와 포즈를 정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억압받던 기숙학교 이야기를 시작으로 니꼴라에 대한 감정을 풀어낸다. 첫째 날 자신이 포즈를 정하게 내버려 두어 건질 게 없다고 말했던 프레노페르는 눈을 반짝이며 그림 그린다. 그리곤 화실 한편에 있던 10년 전 리즈의 그림을 가지고 와 그 위에 마리안느를 덧그린다. 그리고 그 밤 화실에 들어온 리즈는 자신 위에 덧그려진 마리안느 그림을 본다. 리즈가 그 그림을 보았음을 알게 된 프레노페르는 리즈에게 다가가지만 리즈는 자신들의 시간(추억), 작업(꿈)을 버렸고 자신(사랑)을 버렸다는 상처받음을 표현한다.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고 마리안느는 자신을 그린 그림을 마주 본다. 건조하고 차가운 자신의 모습에 마리안느는 충격받는다. 이후 프레노페르는 진짜 느와죄즈는 벽에 숨기고 가짜 느와죄즈를 완성하여 전시한다. 가짜 그림을 전시한 남편의 행동을 칭찬하는 리즈, 바라던 그림을 얻은 그림 수집가. 마리안느에게 같이 돌아가자고 하는 니꼴라,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단단해진 마리안느. 이들은 각기 전시회에서 다른 마음을 안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관계와 4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으로 쉽게 이해하기엔 어려운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에서 인간관계를 찾고 배우고 적용하는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다양한 인물 중 인상 깊었던 리즈와 마리안느를 이야기해보고 싶다.(개인적으로 리즈를 메인캐릭터로 보고 있다) 누드모델이라는 자신을 드러내는 어려운 과정에 서있는 인물이기에.
리즈는 명화가의 아내로서 외롭기도 하지만 조류박제라는 취미활동으로 자신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녀는 느와죄즈의 의미와 작품에 대한 열정이 그녀의 남편이나만큼 있었기에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참아낸다. 젊은 여자를 새로운 뮤즈로, 자신을 뒤 잇는 느와죄즈의 모델로 그리는 남편을 아무 말 없이 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불륜을 의심했기보다는 페레노페르의 뮤즈가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자신과 마무리 짓지 못한 작업을 다른 사람과 한다는 것은 질투 또는 존재의 위태로움으로 나타났을 테니까. 감정을 숨기던 리즈는 자신의 작품 위에 덧입혀진 마리안느의 누드그림을 보고 폭발하고 만다. 서로의 사랑과 열정으로 만들어온 기억까지 덮어버려졌다는 생각에. 이에 대해 페레노페르는 리즈를 사랑해서 그리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피, 불, 얼음과 같은 차갑고 메마른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리즈는 자기 자신을 마주 볼 수 있는(최소한 시도할)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내고 그 과정, 결과를 함께 하고 싶어 했으니까.
마리안느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기보다 니꼴라가 하는 등 자기 발현 훈련이 필요한 인물이다. 모델일을 처음 해보는 마리안느는 정해주는 포즈 안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점차 자신과 니꼴라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의 의지로 포즈를 정하고 움직인다. 누드모델이라 해서 감추는 게 없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변화다. 포즈를 잡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까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한 마리안느는 자신과 불평등한 관계에 있던 애인 니꼴라와 함께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헤어짐을 결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지만, 그 결정을 위해 자신의 약함을 마주 보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거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는 내게 이 영화는 '나를 드러내라'라고 말한다. 그 과정엔 시간낭비라고 느낄 수도 있겠고, 나를 잘게 부수고 해체시키는 아픔도 있겠지만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훈련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