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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y 23. 2024

아이의 말투

말투 : 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



아이가 말을 시작한 지 9개월째다. 단어만 나열하더니, 이제는 제법 어려운 단어를 섞어 문장을 구사한다. 이제는 그에게도 말투라는 게 생겼다. 나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그냥 선호의 말투.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을 많이 하는 아이. 나는 우리 아이의 말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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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아, 그렇구나~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하면, 아이는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아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내 말이 아이에게 닿았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 조그마한 아이가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걸 바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아이가 나에게 뭘 묻는 일이 많으니,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한다. 


이 어린아이마저 내 말을 집중해서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나는 타인의 말에 선호만큼 집중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2. 엄마, 칭찬해 줘서 고마워.

아이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드디어) 큰 볼 일을 보았다. 화장실 간 게 대수냐 싶지만, 어린아이가 집 외의 장소에서 배변 활동을 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실전 육아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따라 씩씩하게 시도했고 성공한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에 ‘선호, 정말 대단하다. 엄마는 놀랐어!’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갑자기 ‘엄마, 칭찬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 


눈물이 날 뻔했다. 칭찬에 유난히 겸손한 나를 고치고자 그렇게도 노력했는데 아이는 한 방에 ‘칭찬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한다. 


이후에 잘 들어보니, 선호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 같이 가줘서 고마워.’ 

못 알아챈 건 나였을 뿐.  





3. 엄마, 저 비행기에 아빠가 있을까? 

유난히 출장이 잦은 아빠 덕분에 선호의 상상력이 폭발한다. 동네 하늘에도 비행기가 자주 보이는데,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선호는 ‘엄마, 저 비행기에 아빠가 있을까?’라고 물어본다. 짠한 이야기지만 난 ‘글쎄, 근데 아빠는 아직 마닐라에 있을걸'이라고 사실로 대답한다. 그럼 또 선호는 ‘히잉, 아빠 왜 안 오는 거야’라고 응수한다. 그리고는 바로 아무 일 없던 듯이 씽씽이를 탄다. 


상상력인지, 아니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모호하지만 어쨌든 아이는 늘 나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그 질문이 ‘이건 뭐야?’ 같은 꼬리 물기도 있지만, 나 조차도 생각해야 답할 수 있는 질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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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놀이터에 나가면 쌍시옷과 지읒이 넘나드는 초등 형아들의 소리가 들린다. 선호도 언젠간 친구들과 어울리며 과격하게 놀 날이 오겠지. 말 배울 때가 가장 예쁘다는 어른들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뿌리가 단단하면 예쁜 꽃과 잎을 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특히 말투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믿는 우리는, 요즘 선호의 말투 덕분에 웃고 울고 웃는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건지, 아이가 우리를 키우는 건지 헷갈린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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