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조음 검사를 받기까지 - 1
선호가 부쩍 말이 늘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다양해졌고 표현도 풍부해졌다. 32개월 넘어서야 한 단어 발화가 시작된 아이 치고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선호가 아무래도 혀를 위로 드는 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발음이 많이 뭉개지고 아기 발음이에요. 병원 가셔서 한 번 검사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웃기게도 약간 화도 났다. 내 자식이 어때서?라는 자의식 과잉인 어미의 마음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말이 늦게 틔었어도 언어치료 안 받았는데 그냥 저절로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하곤 바로 아차 싶어 "아, 선생님. 우선 감사합니다. 알아볼게요."라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전화를 끊었다.
아이 발음이 그렇게 우려할 정도인가. 애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씩씩대며 혼자 생각하다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그날따라 하원 선생님이 갑자기 "어머님, 선호 혹시 설소대 검사 했었나요? 혀 짧은 소리가 나는 게 저희 아들이랑 비슷해서요."라고 또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와 투 콤보...
저절로 되는 건 없다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또 난 저절로 잘 되길 바라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선호 발음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늦게 시작했으니 언젠간 되겠지 하고 또 미뤄뒀던 것이다.
그 날 바로 집 근처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발달 검사가 아니라 발음 검사를 해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을 기억하여 이비인후과 진료로 예약을 했다. (발음은 이비인후과 담당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진료 날이 되었고, 내시경으로 아이 설소대 구조와 목젖과 목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구조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조음 검사(U-Tap)를 해볼 것이냐 묻는 교수님께 왔으니 해보겠다 말씀드리곤 또 그다음 주로 예약을 잡았다.
조음 검사는 아이와 언어치료사 선생님, 둘이 진행하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40분 걸린다는 검사가 20분 만에 끝나서 선호가 '엄마 들어와~'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가 집중을 잘해 빨리 끝났다며 검사 선생님과 나는 칭찬을 잔뜩 해줬다. (나중에 알고보니 말을 빨리해서 빨리 끝난 것이었다.)
검사 결과는 또 1주일 뒤에 다시 내원해서 교수님께 들을 수 있었다.
(대학병원은 정말 예약-대기-진료-예약의 무한 사이클이다.)
아이는 만 3세 평균 아이들보다 1단계에서 2단계 아래에 있어, 조음 지체가 있는 수준이라 하셨다. 공명/발성/운율은 정상이었으나, 말속도가 조금 빠르고, 구강 개방이 적고, 혀 움직임이 둔하여 발음 명료도가 낮은 것이라 하셨다.
몇 달간 내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을 드디어 교수님께 내뱉었다.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어머님의 선택이죠. 언젠간 알아서 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 발음이 굳어지는 친구들도 있어요. 혀 짧은 소리를 계속 내서 초등학교 돼서야 치료받으러 다시 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땐 늦어요. 오래 걸리고 힘들어해요. 그런데 지금 선호 나이 아이들은 치료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냥 선생님과 노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선호는 하면 빨리 좋아질 거예요."
아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선호를 낳고 키우고 지금까지 줄곧 갖고 있는 육아관이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자연스럽게지, 그냥 큰 개입 없이 알아서 잘/저절로와 같은 말로 느낄 때가 요즘들어 종종 있다. 나 스스로가 자율과 방임 사이에서 매번 줄타기한다. 적절한 개입은 대체 어디까지인 건지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내가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체력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 방향을 정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일에서도 자율과 방임, 개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을 또 마주했다. 힘들지만 이게 부모의 무게인가 싶기도 하다.
_
결과를 확인한 뒤 바로 센터를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또 해결해야지.
아이가 요즘 잘 쓰는 말을 내가 써본다.
또 해보자, 아들아!
* 별책부록
_
검사 결과에 나와 있는 음운 변동 보고 뻥 터졌다. 눈으로 읽는데, 이선호 목소리가 들리는 건 왜 때문인가요. 특히 책샹, 푼션, 눈쎱!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