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주변에 "이것좀 봐봐"를 반복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래 소파는 단연 이거지"라며 내 마음 속 0순위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첨부터 마음에 든 건 이거였으니까.
고민 끝에 놈을 떡하니 마주하고 보니.
불현듯 후회가 스쳐지나간다. 식탁도, 침대도, 책상도 실은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써. 그들을 못 본 체 했던 게 아닐까. (실은 테이블은 다시 바꾸는 해프닝이 있기도)
결국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당연한 소리)
문득 최근 이해에 관해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동병상련.
회사에 나와 같은 수술(갑상선암)을 한 선배가 있다. 브런치를 재개하는 데 큰 용기를 준 선배이기도 하다.
입사 시험 때부터 담당자로 만났고, 또 같은 팀에서 일을 한 연도 있어서 알게 모르게 의지해왔던 선밴데
최근에 같은 수술을 받고 나서 만난 선배와의 대화는 좀 더 특별한 느낌이었다. 뭔가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한다는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니 그랬다. 사실 나도 대학병원 의사의 확진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부모도 형제도, 친구들도 아닌 일 년에 얼굴 한 번 볼까말까한 아는 동생(그녀도 같은 병)이었으니까. 실제로 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자마자 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보니 그 선배도 확진 뒤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구글에서 갑상선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 그녀와 그녀가 준 용기 덕에 나는 이 단어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됐다. 고마움을 전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이해란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일까?
라고 훈훈한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단톡방 친구의 한 줄이 내 등짝을 후려친다.
"근데 그건 또 아닌 거 같은 예시가 같은 경험을 하는 직장 동료들 사이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아(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긴 단꿈에서 깨어난 듯. 아, 그래 그거 아니지란 생각이 불쑥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