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보독립러다. 그 흔하다는 군생활조차 나는 출퇴근 도장(실제로 도장 찍는 일을 했다)을 찍었으니. 정작 제대로 집 떠 나와 홀로 서는 건 34년 만에 처음이다.
꿈은 원대하게 꾸라고 했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독립은 그동안 막연히 꿈꿔오던 나의 로망을 실현하는 데부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한 놈이 바로
기왕이면 수컷 냄새 물씬 나는 놈으로다가. 야옹.
서재였다.
정작 지금이야 한 놈이 아닌 여러 놈(방금까지 규조토 발매트를 검색했다)을 패야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처음엔 침실도 거실도 모두 후순위였다. 자연스레 집 정리 또한 책방이 1순위였다. 가구를 고를 때도 책장을 가장 먼저 골랐다.
문제는 읽지도 않은 책더미였다.
이사 첫날. 텅빈 서재. 이게 다 책이다. 캐리어엔 애장품 슬램덩크와 H2
거짓말 보태서 10 상자가 넘게 나왔다.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녀석을 긁어모으니 생각보다 양이 꽤 됐다.
(또 거짓말 보태서 3분의 1도 안 읽었을 거다.)
천릿길도 한 걸음. 작업의 첫 단추는 분류였다.
분류 작업 中
"소설이 좀 많겠지" 싶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했다. 그 비율을 따져보며 독서 편식을 느꼈다. 반성하진 않았다.
소설은 크게 영미, 일본, 국내 소설로 나눴다. 한 작품에 꽂히면 줄곧 그 작가의 작품을 시리즈로 파는 편이라 그 와중에 또 작가별로 나눴다. 빅 픽처 이후로 한창 꽂혔던 마이클 더글라스, 파주 출판단지에서 대량 구매하고는 단언컨대 한 번도 펼쳐보지 않던 존 그리샴, 나의 최애 작가 서유미, 정유정 외에도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작가가 있었으니.
그의 서재는 어떻게 생겼을까.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노르웨이 숲, 1Q84 외에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받지 않았는지라 얼마나 되겠어 싶었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그의 책 만으로 한 칸을 꽉 채웠다.(그런 의미에서 올 휴가에는 꼭 기사단장 죽이기를 넘으리)
그 외 야구 관련 서적이 3칸, 에세이가 1칸, 비문학이 2칸 정도를 차지했다. 야구 서적은 연도별로 모아놓은 시리즈가 대부분이었다. 전시용(?)을 제외하면 거의 다 소설이었다는 이야기다.
1차 정리를 마친 책방.
모든 일이 그러하듯.
책장 정리 또한 내 맘대로 되진 않았다.
카테고리마다 칸에 맞게 양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작가 별로 책을 나누려 하면 또 높낮이가 안 맞았다.(출판 시기별로 작가의 출판사가 바뀌는 것도 묘한 재미). 마음에 안 들어 칸 이사를 하려고 하면 칸 별로 또 너비가 달랐다. 이 책을 저기다 꽂고, 저 책을 빼다가 여기다 꽂기를 여러 번. 칸 이사에만 분류 작업과 엇비슷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생각보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결정적이었던 건 짐 정리를 도와주러 왔던 친구의 한 마디.
"책장 중간중간에 장식품들이 있어야 좋은데..."
야구공과 브라운아이드소울 앨범(나중에 글로 쓸 일이 있을 듯하다)에 밀려 다시 3층 살림이 2층이 되고. 2층 살림이 1층으로 내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볕도 잘 안 드는 1층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