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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Oct 17. 2022

모든 것을 주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우선 결론을 이야기할게. 엄마는 반대야!

무슨 소리냐고? 행복한 왕자의 선택 말이야.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 

그건 아니라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줘야 할 거 같아.


어느 도시 광장에 동상이 하나 있어. 온갖 보석들로 치장된 정말 아름다운 동상이었지.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를 도시의 자랑으로 여기며 사랑했어. 그리고 여기 제기 한 마리가 있어. 남쪽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변덕스러운 갈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여적 떠나지 못한 제비였지.


재인아, 그거 아니 높은 곳에 올라오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돼. 내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는 거지. 우리가 산 위에 올라갔을 때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갔을 때를 떠올려봐.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행복한 왕자의 눈에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어. 가난으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작가,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 아프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행복한 왕자는 마을의 마음 아픈 광경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남쪽으로 날아가려던 제비에게 부탁을 하지. 제발, 자신의 심부름 하나만 좀 해주고 떠날 수 없겠느냐고. 자신의 칼자루에 박혀 있는 루비를 빼서 아픈 아이에게 전해달라고 하지. 이미 다른 제비들보다 출발이 늦어서 서둘러야 했던 제비지만 행복한 왕자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어. 


“네, 대신 딱 한 번 만이에요.”

한 번만 들어주려고 했던 부탁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어 버려. 행복한 왕자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고 있는 온갖 보물들을 떼어 내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어. 심지어 몸을 덮고 있는 금조각과 사파이어로 만든 눈동자도 떼어버리지.

점점 행복한 왕자는 마을의 자랑이 아닌 흉물로 변해가고, 제비는 따듯한 나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려. 시 의원들은 행복한 왕자를 철거해서 완전히 녹여버리라고 명령하고 제비는 추운 날씨 탓에 죽고 말지.


재인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행복한 왕자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안타까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해서 돕는다는 것, 사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야. 그 상황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마음으로 그치지 않고, 무언가 행동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일예로 텔레비전을 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도와달라는 봉사단체의 광고들을 생각해봐. 그 광고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마음이 쓰일 거야. 하지만 모두가 전화를 하는 건 아니거든. 게다가 마음 아픈 게 싫어서 채널을 돌려버리고 외면해버리는 경우도 많고. 


행복한 왕자는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어. 행동하고 싶어했지. 사실 마음은 힘이 없거든. 

“불쌍해” “안타까워” “돕고 싶어” 이런 마음만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하지만 재인이 너도 알다시피 행복한 왕자는 움직일 수 없는 동상이었어. 그래서 제비에게 부탁한 거지. 행복한 왕자도 대단하지만 제비도 정말 멋지지 않니? 제비도 지금 당장 남쪽으로 날아가지 않는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알면서도 행복한 왕자의 부탁을 지나치지 못한 거야. 엄마 생각엔 말이야. 제비가 꼭 행복한 왕자의 부탁 때문에 심부름을 했던 건 아닌 거 같아. 제비 눈에도 보였던 거야. 안타까운 사람들이. 둘은 마음 잘 맞는 환상의 콤비였지.


행복한 왕자와 제비 덕에 사람들의 삶은 조금 나아졌겠지. 그런데 행복한 왕자와 제비의 삶은 어때? 행복한 왕자는 그 아름다움과 품위를 잃고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고, 제비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지. 남을 위한 내 삶을 희생한 결과치고는 정말 비참하지 않니?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이었다면 엄마는 아마 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책의 결말이 마음에 들어. 하느님이 천사에게 도시에서 가장 귀한 두가지를 가져오라고 하지. 그래서 천사가 가져간 건 뭐였을까? 천사는 행복한 왕자의 쪼개진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져다 바쳤대. 둘은 아마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겠지?


재인아, 세상에는 말이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어. 모든 것이 돈으로, 물질로 가능한 건 아니란다.  귀한 것은 돈으로 못사는 경우가 더 많아. 귀하면 귀할수록 더더욱 돈과는 거리가 멀지.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먹는 저녁 식사 시간, 재인이의 굿나잇 뽀뽀,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재인이의 귀여운 얼굴 등 엄마가 귀히 여기는 것들도 대부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구나.

꼭 행복한 왕자는 그 손으로 사지 못하는 것에 큰 가치를 뒀던 거 같아. 자신의 위치를 버릴 만큼 이웃이 중요했고 그것을 통해 얻는 행복이 컸던 거겠지. 재인이도 아마 살면서 알게될 거야. 나의 것을 희생할 만큼 소중한 것, 돈보다 귀한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마음의 행복을.

 

그런데 재인아, 엄마는 재인이에게 당부할 것이 있어. 행복한 왕자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소외된 것들에 마음을 쓰는 건 좋지만 너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건 ‘너’란다. 지금은 엄마 아빠가 재인이의 보호자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결국 너를 지켜낼 수 있는 것도 너고. 행복한 왕자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결국 그 자리를 잃게 되었을 때 엄마는 많이 슬펐단다. 행복한 왕자를 보며 행복해했을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행복한 왕자를 보며 희망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높이 있다 보니 바로 밑에 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싶었어.


재인이가 모든 것을 주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해. 너를 지키면서 세상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마음을 쓰는 삶을 살아가길 엄마는 바란단다. 참 어려운 일이야. 뭐든 중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하지만 우리 해보자. 그 어려운 것에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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