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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Oct 23. 2022

네 안의 다른 너도 사랑할 수 있다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엄마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그때 엄마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이 가사에 얼마나 뜨끔했는지 몰라. 당시 엄마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온 건지 한없이 까칠하고 예민했어. 불쑥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에게 퍼붓기도 하고, 별거 아닌 일에 토라져서는 온종일 운 적도 있어. 화를 내고 엉엉 울면서도 엄마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되었어.

엄마 마음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건지도 몰랐어. 나 자신이 참 싫기도 했던 거 같아. 한참을 울고 한참을 화내고 나면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불과 몇 시간 전 과거의 내가 참 창피했었단다. 내 마음에 잠깐 악랄한 악마가 왔다 갔나 싶기도 했어.


그러다 들었던, 저 노래, 저 가사를 듣고 생각했지.

‘그렇구나. 내 속엔, 나 말고 어쩌면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나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도 그랬어. 둘 다 ‘나’이지만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지. 그런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 정도가 참 많이 심했어.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성품과 성격까지 완전 서로 달랐단다. 하이드 씨는 지킬 박사가 만들어낸 약을 먹으면 나오는 또 다른 자아인데 잘생긴 용모에 신사답고 지적이었던 헨리 지킬과 달리 에드워드 하이드는 키도 작고 외모도 추악하게 생겼음은 물론이거니와 도덕성도 전혀 없어서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었어. 둘은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 참 어려웠어. 선과 악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 지킬박사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변호사 어터슨 씨조차 마지막 지킬박사의 참회록을 보기 전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지. 하긴 외모까지 다르니 제아무리 눈치 100단이어도 알아차리긴 힘들었을 거야.


처음엔 지킬박사가 하이드 씨를 컨트롤할 수 있었어. 자신이 개발한 약을 먹으면 바로 지킬 박사로 돌아올 수 있었거든. 지킬 박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지루한 일상에서 하이드 씨로 변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면서 일탈을 즐겼던 거 같아.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지 않음에도 하이드로 변하게 되는 등 조절 불가능한 순간들이 찾아들지. 게다가 지킬박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발생해. 글쎄, 하이드 씨가 살인을 저지른 거야. 지킬 박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 하이드 씨로 또 변하게 되면 하이드 씨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 자신이 곧 하이드 씨였지만 지킬박사는 하이드 씨가 두려워져.


물론 책 속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는 극적으로 다르지만 우린 누구나 또 다른 나와 함께 살아간다고 엄마는 생각해. 어떻게 항상 옳은 일만 하고, 좋은 말만 쓰고, 선한 행동만 할 수 있겠어. 사람은 누구나 양면이 있어. 단지 그런 마음을 스스로 단속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행동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지. 교과서에 나오는 정답처럼 바른 행동만 하는 사람은 세상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단다.


가끔 친구가 미울 수 있어, 엄마가 싫을 수 있어, 선생님이 원망스러울 수 있어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야. 행여 못된 생각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렸다고 해서 자신을 탓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란다. 때론 그보다 더 강도가 높은 ‘아, 나 정말 괴물인가 봐.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싶은 악랄한 마음이 너를 지배해버리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근데 있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 하여 절대 괴물은 아니다’라는 거야.


엄마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엄마는 진짜 욕심이 많았어. 샘도 진짜 진짜 많고. 모의고사라는 시험을 보고 나면 엄마 자신의 점수보다 엄마 친구의 점수가 더 궁금했어. 웃긴 게 뭔 줄 알아? 당시 엄마는 엄마 점수가 잘 나왔을 때보다, 엄마가 엄마 친구보다 시험을 잘 봤을 때 더 기분이 좋았어. 진짜 못됐지? 그때 엄마도 그런 마음을 품는 게 참 싫고 괴로웠어. 나 스스로가 너무 못난이 같고 친한 친구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다는 게 끔찍했어.  아무리 그런 마음을 안 갖으려고 해도 자꾸만 못된 마음이 엄마를 지배해버렸어. 괴로웠지. 나 자신이 미웠어.


그러다 이런 문구를 우연히 읽게 되었어.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야.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딱 엄마였거든. 엄마 마음속 괴물은 엄마만 있는 게 아니더라.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는 소설의 말에 엄마는 큰 위로를 받았고 오히려 그때부터 좀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아. 괴물이 덜 찾아왔거든. 아마 엄마가 엄마 마음을 인정하면서 그 마음과 친해졌던 거 같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심각하게 다른 두 자아는 아니겠지만, 우린 누구나 내 안의 다른 내가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가끔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내가 불쑥불쑥 나타나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그 마음을 인정하고 품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럴 수 있어. 나만 그런 건 아니야’ 하고 말이야.


물론 그 포용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어 주면 좋겠다. 가족이 또는 친구가 평소 네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말을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무조건 적인 비난이 아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왜 그랬을까?’ 하고 먼저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지킬박사는 어찌 보면 완벽한 사람이었어. 그랬기에 자신의 다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게 곪고 쌓여서 괴물 같은 하이드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친구들에게도 하인들에게도 대중들에게도 늘 좋은 평판을 듣는 지킬박사가 처음 마음속 하이드의 존재를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랬을까?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품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거라 믿어.


재인아, 우린 우리 마음속 여러 가지 모양의 ‘나’와 친하게 지내자. ‘나’ 자신과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엄마는 생각해.

그래서 엄마는 엄마 자신과 친하냐고? 음, 지금도 친해지는 중이지만 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해.

재인이도 재인이와 친해지길 바라. 누구보다 너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렴.


-어떤 모양의 너라도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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