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토론의 가장 좋은 점은 강제적으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담서원에서 읽고 토론하는 동화들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 <주운 아이>인데 이 동화로 토론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어린 시절의 온도를 유지한 채 남아있는 사람이 정말 많고 부정당한 자아는 나쁘고 못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요즘에는 상처는 물론이고 단지 나쁜 기억 정도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인 사람도 많이 만난다. 맥락이 아닌 단어와 문장 자체에 불꽃처럼 반응하는 사람도 많고. 페북에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들 또는 페친 위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문해력이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실은 우리가 문해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기 때문에 학교 문제도 커진 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샜는데 이 동화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운 문장이 섬네일의 바로 저 문장이다. 상대가 날 거부하지 않는 이상 난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세 번이나 하는 장면이고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사실 자기와의 통합을 다루는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는 정말 쉬운 동화다. 그런데 버린다는 문장에만 꽂혀서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반 정도 된다. 물론 토론을 하면서 인지적으로 명확히 정리가 되면 감정적으로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다.
이 영상은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 현장을 편집한 영상인데 참석자들의 내밀한 얘기는 자르고 내 설명 위주로 정리하긴 했지만 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아주 과격한 댓글이 달렸다. 지금은 삭제 됐지만 댓글이라기보단 일기장에 쓴 말 같은 문장이었는데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 동화 내용과도 상관이 없었고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좋아요가 전보다 적은 걸 보니 이 말이 무조건 싫은 사람이 많긴 많은 것 같다.
난 여전히 의문이다. 아니, 그럼 네가 날 버려도 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이런 사람이 좋단 말인가! 그거 희나리 감성입니다요. 무섭다고. 버림받으면 끝내는 게 건강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