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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07. 2022

<여행 선언문> 후기

누구도 잃지 않는 여행을 위한 작가의 비장한 선언

   이주영 작가의 신작이 <여행 선언문>인 걸 알고 여행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기대도 됐지만 왜 제목에 선언문이 들어갔는지 궁금했다.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작가의 프랑스인 남편인 에두아르와의 관계의 여정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왜 여행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에두아르의 이야기가 가장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상상과 해석을 해가면서 읽어봤다.


   작가의 전작인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를 읽었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었다. 독특한 프랑스 남자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고 그 인물 가까이 있으면서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소개하는 작가의 시선이 정말 독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을 읽자마자 열심히 적어 내려갔던 서평을 얼마 전에 다시 읽어 봤는데 내가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 구구절절 느껴졌다. 그때 서평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에 대한 답이 <여행 선언문>에 서술돼 있었다. 이건 아마 그 책을 읽은 사람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디테일이 아닐까 싶다.


   난 독신이다.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어하면서 열심히 읽을 만한 심리적 동기가 거의 없다. 웬만하면 커플 이야기는 읽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타인의 섬세한 행복은 내가 느끼는 삶의 공허함을 더 자극할 것만 같아서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주영 작가의 이야기는 다르다. 너무 싫은데 겨우 산다면서 시종일관 욕만 하는 허세도 없었고(때로 난 그런 태도가 허세로 보인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얄미운 비명도 아니다. 각자의 세계가 너무 뚜렷한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싫은 건 싫고 양보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공존하고 있는데 딱히 꾸미지도 않고 미화하지도 않는 것이 읽기 편했다. 끝까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시종일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리뷰

삶이라는 여행에 동반자가 생긴다면

   <여행 선언문>은 수련회 마지막 밤의 진실게임 같다. 여러 여행지에서 펼쳐지는 작가와 에두아르와의 만남과 결혼, 결혼생활과 갈등의 여정은 표지 디자인을 통해 예상했던 이야기와 전혀 달랐다. 이 책은 한 사람과의 관계가 진정한 종착지를 향하기까지(종착지가 어디든 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러야 하는지를 여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잘 아는 여행지, 잘 모르는 여행지, 가고 싶었던 곳, 생각지도 못했던 곳, 초대받은 곳, 우연히 머무른 곳 어디를 가든 여행지에서는 힘든 일이 생기고 지겹거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후회가 되고 힘들고 짜증이 나도 또 내가 간 곳이 아무리 멀어도 여행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와야 하기에 다시 힘을 내고 짐을 꾸리고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그리고 돌아와 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지겹기까지 했던 내 일상이 소중하고 포근해 지기 마련이다.


   작가는 여행을 많이 했지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건의 회피 때문에 여행을 했고 그러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 에두아르는 ‘여행에 미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고 상대방이 좋은 것을 즐기거나 선호하지 않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들과 싸우기도 잘하고 힘든 일이 있거나 뒷수습할 일이 많아도 대책 없이 덤비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안정을 바라고 질서와 정돈을 교육받은 한국인으로서 작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여행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안다. 난 아주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같이 갔다가 상대방이 나만 믿고 매달리는 일주일을 보낸 후 상대방과 영영 멀어진 경험이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여러 면에서 다른 두 사람이 이룬 가족이다 보니 분명히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 과정이 어떻게 서서히 일상에 스몄는지가 다양한 여행지를 거치면서 켜켜이 쌓인다. 뭔가 불안해. 작가가 너무 힘들었겠어. 한국어에 이렇게 능통한 사람인데 외국에서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조마조마하며 책장을 넘겼다.


관계라는 여행에서 누려야 하는 것들

   이 책을 읽을 무렵 나는 <한낮의 우울>이란 책을 다 읽은 상태였다. 그 책의 말미에 우리가 고통을 안 느끼는 삶, 우울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삶을 가능케 하는 약이 있다면 그 약을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참 어려운 문제다. 약이 나오고 그 약으로 인해 어떠한 노력도 없이 일정한 감정, 고통, 노력의 필요성을 없애도 된다면 과연 어디부터가 당연한 것일까? 그런 약이 상용화되었을 때 그 고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인류는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까? 앤드류 솔로몬은 본인이 우울로 인해서 삶에 대한 더 많은 성찰을 얻었고 기쁨을 더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하며 우울도 우리에게 일정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것은 우울을 예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차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한 겸허한 조언으로 들렸다.


    켄 리우의 단편 중 <심신 오행>이란 작품에서는 미래 사회를 무균 사회로 그리는데 이전의 세상은 인간이 몸속에 각 체질적 특성을 드러내는 온갖 세균과 함께 살아가며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익히고 맞는 음식을 먹고 그럼으로써 감정도 느끼고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는 설정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래사회에서는 인간을 무균 상태로 만들어서 슬픔이나 사랑 같은 쓸데없는 감정은 안 느끼는 편안하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너무나 똑똑한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인공지능이 많은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준다. 무균의 삶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유균의 행성에 불시착하고 그곳에서 오래전에 낙오된 인류가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심신 오행을 다스리는 삶을 경험한다. 불편했지만 강렬했던 충동,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로 갈등한다. 주인공의 불시착은 무균의 삶과 그것을 다스리는 삶 중 무엇이 자기가 원하는 삶인지 결정해야 하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여행 선언문>의 작가 이주영은 내가 읽은 어떤 책의 작가보다도 발랄하고 언제나 유모어와 따스함을 구사하는 글을 써낸다. 높은 취향과 학식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스며있는 글인데도 위압감이 없고 정말 편안하게 읽힌다. 난 이런 문체가 이주영이라는 작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드러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짙은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굳이 무게를 잡지 않고 길게 어려운 말을 펼치지 않아도 관계라는 긴 여행에서 점점 어떤 여독이 쌓여갔는지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고통을 이  삶에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무균의 삶과 유균의 삶 중 무엇이 정말 원하는 삶인지. 여행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과정을 정말 끝내야 하는지 진지하게 결정해야만 하는 극단의 밤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 단순한 말싸움 한 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지쳐 있었다.
노르망디


   책의 전반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작가는 여러 나라의 삶을 수행해 낼 만큼 강인했지만 그런 삶을 시도해야 할 만큼 고통에 민감하고 취약했던 사람이었다. 이국에서 자신에게 지속적이고 끈질긴 애정을 보이는 프랑스인 남성에게 그토록 뻣뻣하게 구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작가가 타국에서의 삶을 전전했던 것은 어떤 이별에 대한 회피이자 슬픔의 표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통을 경험하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참 힘들다. 고통을 남긴 안긴 관계의 기억은 다음에 만날 사람과의 만남을 방해하고 어떤 문을 영원히 닫아버리기도 한다.


어떤 존재에 대한 여행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과정이 아닐까? 어떤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고 아무리 샅샅이 헤집고 다녀도 절대 다 알아낼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알던 길만 가고 안전한 경로만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며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에 상처를 안은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과 모국어가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한다는 것은 흥미롭고 기대되는 일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회피할 수가 없어서 선택하는 길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예전에 써먹었던 최적의 경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가던 길만 갈 수는 없어서 새로운 길을 가야만 했던 나의 지난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큰 고통이 삶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면 CS 루이스가 말한 상자 속의 삶처럼 인생은 안전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심신 오행>에서 그려지는 무균의 인류처럼 사랑도 할 줄 모르고 감정을 느낄 줄도 모르고 후회나 의혹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선택 이후 달라지는 여행의 형태

   나는 20대가 끝날 때까지 늘 가족이나 단체가 함께하는 여행만 했었다. 친구끼리 모여서 오직 놀기 위해 떠나는 여행조차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20대가 끝날 무렵 독립했는데 그때 낯선 서울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여행하는 기분의 삶을 시작했다. 그제야 친구와 떠나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을 시도하게 됐고 정말 즐거웠다. 어느 날 친구와 몇 달에 걸쳐 준비한 대만 여행을 하루 앞두고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동반 여행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여행을 포기했었다. 누군가와 같이 갈 생각도 못했고 혼자서 여행지에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다. 숙소 예약도 항공편 예약도 여행 경로도 모두 내가 혼자 정했는데도 혼자 떠날 엄두가 안 났다.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났을 때 난 5주 동안 혼자 동남아시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혼자서 하는 여행을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의 나는 사람에게도 그랬다. 한 사람과의 관계에 상처받으면 그다음 사람을 늘 그 기준에 맞춰 방어했고 극복할 자신이 없는 문제점이 파악되면 애초에 선을 긋고 상대방을 멀리했다. 하지만 의지할 사람 한 명도 없이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다닌 후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많이 변했다. 필요하면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어떻게든 내가 뭔가를 주려고 노력하고 호기심이 이는 이상 아무리 대하기가 힘들어도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작가는 독신이 아니니까 본인의 삶을 꾸려나갈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행을 다닐 때 자기 스타일이라는 것을 고집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게 어떤 것일까?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불안 요소가 된 오로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삶이 무엇인지 상상도 안 된다. 이 책 중간에 여행 경로가 꼬여서 씻을 수도 제대로 된 숙소를 찾을 수도 없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동반자 때문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도저히 난 못 견뎠을 것 같다.


   <여행 선언문>을 읽고 어떤 친구가 생각났다. 내가 쓴 글 때문에 인연이 닿아 친해졌는데 친구가 되는 과정이 거의 전쟁이었다. 서로가 너무 비슷하면서도 너무 달라서 속이 다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나는 싸움을 수시로 했고 싸우고 나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손을 내밀어서 화해를 했다. 상대방을 진짜 믿게 되는데 몇 년이 걸렸던 것 같다. 마치 여행 선언문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제대로 된 숙소를 못 만나서 오직 고통과 후회만이 존재하는 여정을 수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 서로 만들어가고 있기 한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고 힘들기만 한 상태. 그런데도 그 여행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사람에 대한 여행을 앞으로 많이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상대에게 먼저 내어주고 어쩌고 하는 소리 많이 들었지만 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정말 많이 참으면 상대가 아주 조금 변하기도 했다. 할 만큼 했는데도 안 변하면 돌아서는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에두아르에게 맞춰가며 사는 것은 아닐까?
그에 맞춰 변한 것이 억울하다기보다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 걱정이다.
- 베른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던 구절이다. 어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워지면서 원래의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불안함. 오로지 혼자서 자기의 삶을 살아내는 걸 오래 한 사람은 그게 힘들고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싸움으로 그려지지만 그렇게 큰 싸움은 대부분 자기부정 또는 자기에 대한 실망에 대한 분노일 때가 많다. 불안하기 때문에 긍정받고 싶은데 상대가 논리 논리 거리면 진짜 논리고 뭐고 얼마나 꼴 보기가 싫겠나. 토론하자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남편이라고 있으면 편들어주고 지지를 해 줘야지!! 내가 겪었던 일들과 오버랩되면서 너무 분통이 터졌다.


   지난 5월에 아주 오랜만에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코로나 때문에 혼자 여행을 안 한지 2년 반이 넘은 시점이었고 일과 사람 때문에 지치고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병 때문에 먹는 약의 부작용으로 호르몬 변화도 겪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경로 탐색을 포기하고 있었다. 7일 동안 어떤 여행지도 찾지 않았고 어떻게 찾는지도 생각이 안 났다. 그냥 곁에 아무도 없다는 슬픔만 되뇌면서 불행을 곱씹었다. 날씨가 좋아도 나빠도 우울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여행력을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앞으로 나는 혼자 여행을 못할 것만 같았다. 앞으로 계속 여행을 혼자 해야 하는데 여행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다니… 왜 이렇게 된 건지 속상했다.


   이후에 책을 몇 권 읽으면서 나는 고통을 피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에 집중해서 현재의 투자금도 날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우리 벌써 세 번째 돌고 있는 거 같아. 아휴, 미치겠네. 내가 어떡하다 길을 잃었지? 말도 안 돼! 주영, 우리 오늘 여기서 밤새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마음의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 길을 잃더라도 밤새도록 걸어야 해. 잘못하면 늑대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내 옆에는 에두아르가 있었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 마시프 상트랄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책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여행지에서 작가가 느낀 감정,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 비록 힘든 고민 속에 결정한 것이고 쉽지 않았겠지만 무균실의 안전한 여정보다는 없어지지 않을 피곤함이 보장된 프랑스인 남편과의 여행을 재결 심하면서 자기를 잃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고 선언하는 작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따라서 다짐을 해본다면 나는 반드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소개하며 누군가와 다시 그곳을 찾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면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찾을 시간의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책을 안 읽은 예비 독자들에게서 이야기의 결말을 궁금해하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으니 다 밝히진 않겠지만 책의 막바지로 갈수록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북클럽 호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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