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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01. 2020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유쾌한데 감동적이고 지적인데 시트콤 같은 책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호스트인 북클럽 호담서원에 가는 길이었다. 모임 전에 가볍게 읽으면서 기분이라도 전환하려고 버스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부터 너무 웃겨서 당장에 소개하는 포스팅을 할 정도로 첫인상이 좋았다.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기엔 매우 번거로운 제도다. 작가 이만교는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했던가? 나는 결혼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미친놈'과 결혼했을 뿐이다. - 프롤로그


'그때까지만 해도 제정신이었구나!
그는 선천적 비정상은 아닌 것이다. 다행이다. -  선천적 비정상은 아니었어!


작가는 자기 남편 에두아르라는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아주 공을 들여 꼼꼼히 묘사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며 전혀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에두아르에게 감동하거나 위로받은 장면의 진정성은 참으로 담백하고 진지하다. 책에 둘러싸여 살지만 인간과 적당히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자기를 위해서는 별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디에나 나서서 싸우는 적극성과 오지랖, 모든 학생에게 사랑받는 진심이 통하는 언어를 가진 사람. 이 모든 면을 다 가진 인물이 바로 에두아르다.


책이나 말, 글과 소통이라는 화두를 언제나 머릿속에 담고 살아야 하는 나는 에두아르를 보면서 위도로 받고 충격도 받았공감과 반성을 하다가 안심도 했다. 프랑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학부에서 공부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에두아르가 어떻게 교육받고 어떻게 자기 가치를 지키고 주장하며 온갖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지를 보다보면 솔직히 누구랑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이란 생각이 앞선다.


작가는 돌부처인가? 어떻게 이걸 참아? 


하지만 다양한 언어를 넘나들며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던 두 사람이야 말로 정말  남다른 서로를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랬기에 이렇게 심각한 장애물(?)인 책이 있는데도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매일매일 미쳐버릴 것 같은 짜증이 올라온다고 해도...


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나에게 책에 미쳐 사는 프랑스 남자 에두아르와 그를 관찰하는 작가 이주영의 이야기는 웃기는 남 얘기로서도 성찰의 도구로서도 훌륭다. 난 어려운 책도 좋아하고 두꺼운 벽돌 책도 좋아하지만 진정으로 인간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작가와 독자에 의해 체화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공부해도 그 지식이 날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논리를 너무 따지는 나의 머리가 나를 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책. 다른 사람들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몇 가지 장점을 정리해 본다.


이 책의 몇 가지 매력


1. 재미있는 문체

 번역가 통역가이며 20대부터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다 지금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파리에서 살고 있는 작가 이주영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다. 저자의 남편인 에두아르의 캐릭터 자체도 매우 흥미롭지만 작가의 시원시원하면서도 강약이 적절 막 내지르는 문체가 아니었다면 에두아르가 이렇게 멋지게 그려질 수 있었을까 싶다. 정말 말투가 너무 웃기다. 비속어 마구 튀어나옴. 마음에 쏙 든다.


에두아르는 나를 짜증 나게 만드는 전형적인 유형의 인간이다.  불쌍해서 외면할 수 없는 인간 - 책 구매 금지령을 해제합니다.


2. 흥미로운 인물 그리고 관계


 작가의 남편 에두아르는 엄청난 다독가이자 사고뭉치에 손이 많이 가는 남성이다. 애초에 욕부터 하고 시작하는 글의 전개상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계속 갖고 책을 읽게 된다. 작가가 40대 때 한 결혼이라는 것 에두아르가 같이 살기엔 참 힘든 점이 많은 사람이라사실이 겹쳐서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했다. 기이함이라는 감정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고마움과 안심으로 점점 변해 간다.


 이렇게 건망증이 심하고 자기 멋대로 사고를 치는 싸움꾼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다가 아무리 봐도 나는 작가 이주영보다는 책벌레 에두아르에 더 가까운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마음이 숙연해졌다. 작가는 에두아르를 아주 대놓고 한심해하는데 얼마나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갖고 진심으로 답답해하는지가 느껴져서 웃기면서도 아내의 인내와 이해를 누리는 에두아르가 럽기도 했다.


3. 에세이에서만 볼 수 있는 사소한 유럽의 풍경


 난 프랑스 파리는 물론이고 유럽 언저리도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는 더욱 갈 수 있는 확률이 낮아졌다. 책의 한 구절에서 작가의 남편 에두아르가  버스에서 스피커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잔소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프랑스도 여기랑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했고 프랑스의 가족과 친구 문화나 이웃 나라를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삶의 결이 묻어난 묘사들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 에두아르의 삶을 소개하면 프랑스의 학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현장 학습 모습, 입시 제도가 어떤지 등등에 대한 얘기가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전개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도 오랜 세월 국어 문법과 문학, 독서를 가르쳐온 사람이다 보니 어학 교사이자 문학 교사인 에두아르를 통해 프랑스 학교의 모습을 슬쩍슬쩍  보는 것이 감질맛 나면서도 매력 있었다. 사명감 있는 프랑스 교사의 모습과 열정이 학생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허구가 아닌 에세이로 읽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다.


4. 임없이 언급되는 명저들


나도 에두아르처럼 다른 덴 돈을 잘 안 써도 책을 사들이는 데는 망설임이 없고 책을 사려고 별 핑계를 다 만든다. 에두아르의 삶엔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생성된다. 작가는 책을 몇 권이나 낸 다독가다. 두 사람이 책의 구절을 주고받으며 두뇌 싸움을 하는 것이나 책을 통해 서로의 입장에 서며 이해하고 합치하는 과정정말 감동적이다.


두 사람이 책의 구절을 주고받거나 말싸움을 하면서 인용하는 책들 그리고 도처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책 이야기 때문에 매력적인 책이 끝도 없이 언급된다. 만약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용구를 읽는 것만으로 어떤 책인지 알아차리는 재미 그리고 처음 읽는 구절에 매료되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완독을 한 지금 우리 집으로 6권의 책이 배달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책들이다. 그러니까 이건 이주영과 에두아르의 계략인 것 같다. 결국 책벌레 욕하면서 책을 사게 만들고 읽게 만든다. 다행이다. 책 살 핑계가 있어서. 내 탓이 아니다. 이 부부 탓이다.


5. 책에 대한 허세를 비웃는 이 진지한 가벼움


내가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다음 구절이다.


에두아르가 '머리가 좋다'는 말에 민감한 것은 천재들 사이에서 느꼈던 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 (중략) 에두아르는 천재들 사이에서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면서 그들과 동등해지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 책 읽기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 미친 책벌레가 된 이유



많은 사람들이 유식한 사람을 보면 천재라고 하고 때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지적 엄숙 주의나 지식과 지혜를 대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묵직한 의문을 던진다. 에두아르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에 부끄러움을 모르며 남이 모른다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항상 자신은 부족하다는 전제로 살아간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태에 진입한 진정한 책벌레인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들과 같이 읽고 독서 토론을 해보기로 했다.


외국인과의 교류, 독서, 책, 관계, 문화와 교육 등등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일단 재밌어서 권하는데 아무 망설임도 없었다. 학생이나 자녀들과 같이 읽으라고 권할 수 있는 책이다.


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 정말 좋았다. 원래 평소에 부부의 이야기를 별로 재밌어하지 않는다. 공통점이 없다보니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 부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각자가 서로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억지스럽게 미화되어 행복이 넘치고 햇살이 반짝이는 것처럼 묘사됐다면 얼마나 지루했을지...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개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부부의 특징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부부인데 남편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멋졌다.


그 마지막 구절은 다들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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