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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Jul 18. 2022

<범죄도시 2> 리뷰

영웅의 서민성이 주는 감동

<범죄도시 2>

1.

오랜만에 동남아의 도시 풍경을 봐서 뭔가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 혼자 호찌민을 여행하다가 폰을 날치기당할 뻔했던 순간이나 밤에 길을 잃어 숙소를 찾아 동동거리던 일들이 생각나서 오싹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부자들 대상 범죄가 많았지만 내가 여행 다니던 당시에도 홀로 여행객 여성 한 명이 유명한 폭포에서 실종된 후 영영 사라진 사건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에겐 큰 공포라서 영화 초반부가 굉장히 현실감 있었고 잔인한 장면들은 잘 못 봄. 혼자 손을 어찌나 쥐어짜면서 봤는지 문득 민망해서 팔짱 끼고 봄.


손석구는 정말 희한한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연기자들은 악역과 선역으로 역할이 갈릴 때 그 전형을 떠올리거나 캐릭터 성격을 파악한 후 나름의 변형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에 따라 표정이나 톤이나 음성이 달라지고. 그런데 손석구는 아니었다. <센스 8>, <멜로가 체질>, <D.P>, <나의 해방 일지> 그리고 이 영화, 어디에서도 확연히 다른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 캐릭터들이 확연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선한지 악한지 가늠이 안 되는 무표정한 얼굴에 웃거나 농담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톤도 그냥 자기 스타일인데 기본적인 캐릭터의 아우라 자체를 변화시켜서 그게 다르게 전달되게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손석구의 연기는 구체적인 상황과 상대의 반응이 나오기 전엔 어떤 사람인지 확연히 알아채기 힘들고 그래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신경 쓰이는 캐릭터 만들기의 달인. 특히 이 영화에서 소름 끼치게 무섭고 잔인한 인간인데 딱히 엄청난 노력으로 그런 모습을 만들어냈다기 보단 그냥 똑같은 인물인데 타고난 범죄자란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이 여러 생을 환생하며 같은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면 저렇겠단 생각을 하게 되어 감탄했다. 웃는 것까지 똑같은데 어떨 땐 귀엽고 어떨 땐 무섭다니. 보통은 귀엽게 웃거나 무섭게 웃는데 손석구는 손구처럼 웃는다.


2. 경찰들

난 여기 나온 경찰들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굉장히 감동받은 장면이 있었다. 외국에서 들여온 범죄자들이 회장을 폭행해서 트렁크에 넣는데 CC TV를 모니터링하던 막내 경찰이 무전을 치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실제 강력계 형사들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목숨이 몇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엄청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면서 초능력 같은 대범함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저럴 수 있는 원천이 뭘까. 무모함일까. 용기일까. 직업의식일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자는 시간 외에는 늘 일을 하는 나로선 솔직히 이해 안 되는 업무 불평에 피곤감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는 정말 복지나 여유를 당연히 여기고 요구하고 불평할 수 있는 땅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그럴 때 한다. 내 일은 당연히 내가 하는 건데 누가 안 도와준다고 서운해 할 수 있는 세계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나 할까. 그런 심리적 공간 안에서 이 영화를 보니까 강력 범죄자를 대면해야 하는 강력계 경찰들에 대해 경외감마저 들었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혈혈단신으로 동료가 바로 따라붙을 거란 믿음으로 범죄 현장으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나한테는 거의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 들고 달리는 장면만큼 경이로웠다. 아직도 그 장면을 보며 생각이 복잡했던 순간의 기억이 강렬하다. 급하고 중요하면 앞뒤 안 가리고 일단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덕에 버텨지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의 범죄자들이나 경찰들이나 모두 폭력적 성향이 있다. 아마도 전사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연구를 살펴보면 폭력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범죄자가 된다. 아마도 폭력성과 강한 힘이 있으면서 좋은 가정환경인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여기엔 복잡한 역사적 사회적 해석이 있다.) 폭력을 다룰 줄 알아 치안 쪽에서 법을 수호하는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폭력적 성향은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동석이 연기한 캐릭터가 한국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폭력을 합법적 폭력으로 응징하기 바라는 열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으면서 누군가 영웅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어서 경찰 한 명이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나에겐 그 사람이 가장 실제적인 캐릭터였다. 가장 위험에 처해 있고 가장 용기 있는 사람. 도끼가 날아들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무모한 직업의식. 거기에 기대어 서민들이 안전하게 사는 것 같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2008년도부터 살면서 지금까지 세 번의 경찰 민원을 넣었는데 세 번 모두 5분 안에 처리됐고 친절하고 합리적이었다. 치안의 즉시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영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시리즈에선 평범한 서민 정서에 가깝던 신참들이 느끼는 공포와 주저를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그 성장을 보여주는데 그 동력이 동료의식이다. 난 이 부분이 상당히 좋다.


3.

영화 초반부터 30분 정도까지 내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휴대폰을 열 번 정도 꺼내서 문자를 확인했다. 초반엔 주저하다 내가 가만있으니까 나중엔 수시로 보길래 "휴대폰 보지 마세요."라고 작고 분명하게 말해줬다. 화들짝 하더니 이후엔 착실히 영화만 봤다. 덕분에 주인공들이 수사 허락받는 장면 대사를 거의 못 들었다. 어쨌든 뭐라 하는 순간 약간은 마동석이었다.


4.

1년 전 <블랙 위도우> 이후 영화관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다가 문득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행작 중 고른 영화. 시간대와 상영관  모두 만족스러운 건 이 영화라서 봤는데 그럭저럭 재밌었다. 그런데 집에서 혼자 봤으면 엄청나게 웃으면서 봤을 텐데 사람들이 웃음에 박해서 조용히 히죽대며 봄. 큰 파도 지난 후 보는 흥행 영화 관람객들은 좀 시큰둥한 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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