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음악
나의 얼토당토않던 큰 꿈은 바로, 베토벤과 같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원하는 대학 작곡과에 합격하였고, 꿈을 위해 그 흔한 미팅 한번 안 하고 공부만 하는 속칭 ‘범생이’가 되었다. 주말에는 종로나 압구정 등지에 있는 음반점과 데이트를 하면서 구입한 클래식 음반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듣곤 했었다. 군대를 가게 되었을 때에도, 어떻게든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군악대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있어 대중음악은 그냥 즐기는 음악이었고, 클래식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미사 중에 생활성가를 부르면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짐작이 갈 거라 생각한다. 나는 드디어 큰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군악대 밴드에서 처음으로 연주하게 된 곡은 ‘부산 갈매기’라는 곡이었고, 그 이후로 주로 트로트와 재즈 음악 위주의 대중음악만을 연주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흔한 코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형편없는 수준의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선임들의 독설과 얼차려를 한 몸에 받으면서 나의 군생활은 한마디로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난의 군생활은 오히려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간 몰랐던 대중음악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음악을 연주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특히, 군에서 제대로 접하게 된 재즈 음악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자유롭지만, 엄격함이 있고, 즉흥적이지만, 정해진 규칙이 있는 재즈음악은 내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음악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줬다. 특히,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어느 재즈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쉬(Fred Hersch)의 음악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OQ39JBHii8
그는 재즈 연주자이자 작곡가이고, 클래식 작곡가이기도 하였다.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그의 성향 탓인지 그의 음악에는 자유롭지만 엄격하고 절제되어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 강하지 않은 타건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속을 더욱 깊이 파고드는 매력이 있었고,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더라도 매번 새롭게 재창조시키는 그의 즉흥연주는 그야말로 진정한 재즈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이고 심지어 에이즈 환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코마 상태에 빠져있다가 가까스로 깨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왠지 그의 인생이 녹록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힘들었던 삶이 그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사람들 감동시키는 소리로 나타나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죽음을 넘어서는 의지로 새롭게 태어난 그의 음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부활하신 신비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좀 더 작곡을 공부하고 싶어서 유학을 떠나고자 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고, 지금은 음악 교사이자 동네 성당 성가대 지휘자로서 생활하면서, 진짜 꿈이었던 작곡은 조금씩 취미활동처럼 하고 있다. 그래도 매년 한 곡씩 꾸준히 작곡해온 성가들이 제법 쌓이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포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주님께서는 항상 시련과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큰 은총을 주신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면 우리가 겪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프레드 허쉬가 그러했고, 나의 군생활이 그러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도 매 순간 시련을 겪으며 새롭게 태어날 은총의 시간을 지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은총을 기원하는 화살기도를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