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당신한테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따뜻한 말 한마디.다정한 말투”
남편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순간마다 움찔한다.
그게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집안일에 관심이 많다.
아니 어쩌면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보니 자꾸 눈에 보이는걸까.
구석구석 닦고,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도 굉장히 꼼꼼하다.
누군가에겐 이상적인 배우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때로 불편함이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거나 한숨이 새어 나올 때,
나는 곧바로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제발 집안일에 관심 좀 끄라고!
할 거면 싫은 내색 하지 말고 그냥 하든가!”
나는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후회했다.
남편의 얼굴에 스치는 서운함을 보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남편은 거창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
그는 “고마워”라는 한마디,
“수고했어”라는 짧은 인정을 바랐다.
나는 그 간단한 말을 왜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까.
브레네 브라운은 말했다.
'따뜻한 말은 취약함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취약함을 인정하지 못했다.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남편보다 덜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수고했다고 말하는 순간,
내 몫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나는 다정해지지 못했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때 나는 늘 이런 기분이었다.
내 영역에 간섭당하는 것 같았다.
내가 혼나는 것 같았다.
“너는 부족해”라는 말을 돌려 듣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는 날 선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
“제발 관심 좀 끄라”는 말이, 그 불안과 분노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 어리석은 자존심과 방어심 때문에,
나는 다정해지지 못했다.
뇌과학적으로는 이 반응을 이렇게 설명한다.
작은 자극에도 편도체가 먼저 반응한다.
남편의 한숨, 미간의 찌푸림은 내 뇌에선
'위협'이라는 빨간 불로 번역됐다.
그러니 전두엽은 멈췄고,
나는 반사적으로 화부터 냈다.
이성은 늘 한 발 늦게 따라왔다.
폭식한 날, 거울 앞에서 내 배를 움켜쥐고
죄책감에 밀어부친게 그게 나였다.
나에게조차 다정하지 못했던 내가,
남편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쉽게 건넬 수 있었을 리 없다.
내 입안은 이미 불친절한 언어로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이 바란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그는 내가 화를 참거나, 억지 웃음을 짓길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한 줄의 다정한 한 마디.
내가 가진 날카로움이 잠시 멈추고,
상대를 인정하는 그 짧은 언어.
나는 여전히 서툴다.
감사와 수고의 말보다
불평과 짜증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다.
다정은 거창한 게 아니다.
다정은 결국,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남편의 전화를 다정하게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