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피곤함.
남편은 내 생일마다 호텔 1박 2일을 선물한다.
아이 없이, 집안일 없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평소 같으면 사우나를 가거나, 친한 친구를 불러 와인을 마시며 놀았을거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책 한 권으로 채웠다.
최재훈의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그 책을 붙잡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웃기게도 생일 선물 같은 호사스러운 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칠까.
나는 늘 스스로를 단정 지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아이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남편의 한숨에도 곧바로 날을 세우는 사람.
동네 엄마들의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에도 괜히 마음이 쓰이고, 밤새 그 의미를 곱씹는 사람.
모임에서 누군가의 말투가 조금만 딱딱하면 집에 와서 며칠 동안 그 장면을 되새김질하는 사람.
“그 말의 진짜 의미가 뭐였을까?”
“내가 괜히 불편하게 했던 건 아닐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한 순간을, 나는 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의미를 부풀리고,
결국 스스로 상처받았다.
그 피로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향했다.
남편에게, 아이에게, 아무 이유 없는 날 선 말로.
나는 그때마다 후회했고, 그러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책 속에는 내 이야기가 있었다.
HSP, Highly Sensitive Person.
남들보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
인구의 15~20%쯤 된다고 했다.
책은 말했다.
예민함은 성격 결함이 아니라, 뇌의 감각 처리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작은 표정, 작은 소리, 작은 뉘앙스를 더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래서 쉽게 지치지만, 동시에 깊이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도 크다.
나는 책장을 덮을 때마다 이상한 안도와 충격을 동시에 느꼈다.
고장 난 게 아니었다.
그냥 다르게 태어난 것이었다.
뇌과학적으로도 설명됐다.
HSP의 뇌는 감각 입력을 깊이 처리한다.
편도체가 더 자주 더 빠르게 활성화되고,
전두엽은 금세 소진된다.
작은 자극도 위협으로 느껴지고,
감정 조절은 무너진다.
그러니 남편의 한숨 하나에도,
아이의 칭얼거림에도 나는 먼저 폭발했다.
그리고 뒤늦게 이성이 따라왔다.
후회는 항상 한 발 늦었다.
나는 내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그런 줄 알았다.
사실은 기질 때문이었다.
물론 기질이 변명은 아니다.
책은 분명히 말했다.
‘예민함을 줄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예민함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내내 잘못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내 기질을 없애려고, 억누르려고, 부정하려고만 했다.
그러니 늘 지치고, 늘 불친절했다.
호캉스 침대 위에서 나는 그제야 인정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체념은 틀렸다.
나는 원래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니까,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게 맞았다.
요즘 나는 딸아이를 본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긴장하고,
새로운 환경에 오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아마도 내 DNA를 물려받은 게 아닐까.
아이 역시 어느 정도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절실해졌다.
내가 먼저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이 기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엄마인 내가 이미 몸으로 겪고 있으니까.
나는 더 이상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고 체념할 수 없다.
아이에게 같은 피곤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조금씩 다정해지고,
이 기질을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쉬는 법, 멈추는 법, 작은 말로 다정을 표현하는 법.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일까.
아니, 나는 원래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질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