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한마디 / “죽은 자를 아프게 말하지 말라”
최근에 교학사가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고급(1.2급) 최신 기본서>에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하는 합성사진을 사용해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편집자의 단순 실수”라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출판윤리는 물론 출판인으로서의 도리마저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라틴어로 “De mortuis nil nisi bonum”라는 경구가 있다. 이 말은, “죽은 자를 아프게 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은 자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좋은 것만 제외하고 죽은 자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죽은 자를 흠모하지 않더라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De mortuis nil nisi bonum”라는 문장은 일반적으로 "죽은 자에 대해서는 그냥 좋은 말만 하면 된다."는 “Nil nisi bonum”이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간단히 줄여서 말할 때는 "죽은 자에게 아픈 말하지 않기", "죽은 자에게 악의 없이 말하기", "죽은 자의 병을 말하지 말라"등의 격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구절이 처음 사용된 기록은 디오게네스가 저명한 철학자들의 삶과 견해(AD 300년 경)를 기록한 책에 실렸고, 그리스의 일곱 현자 중 한 사람인 스파르타의 치일론(Chilon of Sparta: BC 600년 경)도 이 말을 강조했다. 그런데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인본주의 승려라고 불리기도 하는 암브로지오 트레버사리(Ambrogio Traversari)가 그리스어로 된 디오게네스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1433)한다. 이 책에서, “De mortuis nihil nisi bonum” 즉, “죽은 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라틴어 격언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한편,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15년에 쓴 에세이 “전쟁과 죽음, 그리고 시간에 대한 생각”에서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 대해 언제나 특별한 태도를 취한다. 매우 어려운 일을 성취한 사람에게는 거의 감탄할만한 경외심까지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잘못을 찾아내기보다 그의 선행을 찾아내고 그가 축복받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한다.
언제나 누구의 장례식에서든지 죽은 자의 잘못을 말하고 들추어냄으로써 조금이라도 희열을 느끼는 자라면 진리를 논하기 이전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설혹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죽은 자에 대한 비판을 삼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진정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를 찬양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무런 칭찬이나 존경의 뜻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미 그런 침묵 행위가 죽은 자를 평가한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인간에게 가장 해악이 되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묘비라고 말한다. 죽은 자에게 험담을 하지 않는 대신 묘비는 언제나 죽은 자에게 경외심을 불어넣는 말로 치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자의 장례식에서 그를 찬양하는 일이 정당한 것처럼 행동하고 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면서까지 그에 대해 기억하기 좋은 것만 새겨 넣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죽은 자가 공적으로 악을 행한 자라면 악한자의 행위가 얼마나 악한지, 또한 왜 악을 행하고도 철면피 같은 얼굴로 평화를 위장하고 있는지를 만천하에 알릴 필요가 제기 된다. 이런 일은 죽은 자를 용서하거나 비난하는 행위와 상관없이 정의를 수호하고 미래에 대한 하나의 지침을 마련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무수한 영혼을 파괴하고 살해한 가해자는 아무리 그가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그의 행적을 낱낱이 공개하고 전 민중의 이름으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해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그 배려가 혹시 진리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