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송미술관
“지난 10월 어느 날 친구부부와 우리 부부는 반가운 마음으로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새로이 대구에 문을 연 간송미술관은 엄청난 사람들로 붐볐고 전시작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모자람이 없는 위대한 우리의 유물들이었다.”
간송문화재단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 최초로 사립 미술관을 설립, 운영해 왔다. 간송문화재단이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이라는 근대 건축물을 세우고 지금까지 간송문화전을 통해 한국 미술사 연구의 중추로서 자리매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간송미술관에서 그동안 소중하고 멋진 우리의 유물들을 보면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간 거두고 보듬은 숭고한 의지와 노력을 새삼 느낄 수 있어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올해 2024년 9월 3일 드디어 대구에 서울의 간송미술관 보다 더욱 발전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간송박물관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6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대구시가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운영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그동안 미술관 공사를 마치고 마침내 개관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정신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40건 97점, 간송 유품 26건 60점을 특별히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다. 간송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작품들이 천여점에 이른다고 하니 앞으로 상설전시관인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고대해 본다.
그런데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전시회를 보면서 문득 아쉬운 점을 느끼게 된 것은 유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테니 오늘은 간단히 느낀 점 몇 가지만 적도록 한다.
첫째, 유럽의 박물관들을 보면서 우선적으로 느꼈던 것은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건축물 그 자체도 멋진 작품이구나라는 점이다. 대게 유럽박물관들이 오래된 성을 활용해 박물관을 만들고 그곳에 예술작품이나 유물들을 전시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기왕이면 서울이 아닌 대구에 새로이 문을 여는 간송미술관이니 만큼 세계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 건축물이라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기에 제법 그럴싸한 건축물이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미술관은 미술품이라는 물품을 전시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따라서 미술품을 전시하는 건축물의 생김새에 따라 공간의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미술관에 전시하는 작품들의 특징을 차용해 건축물을 설계하고 지었더라면, 이를 통해 미술관을 또 하나의 작품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공모를 통해 결정한 대구간송미술관 건축물이라는데 지금 대구간송미술관을 대표하는 이미지(카탈로그에 실은 모습과 인터넷 배경화면)는 생경한 ‘기둥’이 중심이다.
관람객들이 주차를 하고 입장권 구입을 위해 반드시 먼저 거쳐야 하는 공간이 바로 기둥이 서있는 곳을 지나야 만 한다. 바로 이 지점이 관람객에게 주는 첫인상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기둥은 어느새 대구간송미술관 대표 이미지로 각인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와 함께 건축물로서 대구간송미술관은 지하층과 지상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 사이사이에 화장실과 휴게실을 적절히 배치해 놓지 않아 쉼과 전시 관람의 여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전시공간을 번호를 매겨 놓기는 했으나 그냥 따라가면서 관람하는 게 아니라 일일이 전시실 번호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 규모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간송미술관 보유 유물 전시공간을 이 정도 규모의 공간으로 만족해야 했는지 궁금하고 아쉽기 짝이 없다. 문득 “조막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둘째, 관람객에게 자유롭게 사진을 찍도록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그 덕분에 관람객들이 귀한 작품들 모습을 두고두고 즐길 수 있으니 참 좋다. 그런데 유물의 종류에 따라 조명이 전혀 받쳐주지를 못해 좋은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후보정작업을 엄청 공들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 붙어있는 설명문과 해설 등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보니 그저 지나쳐야만 하는 경우까지 있어 아쉽기 그지없다.
셋째, 이번 개관기념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획은 국보, 보물 특별전이랄 수 있는데 이중에서도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특별한 공간에 별도로 전시하도록 한 것은 돋보이는 기획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없게 특별공간에 모셔놓은 게 도리어 특별한 작품의 진가를 보기 어렵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가 따른다.
멋진 작품을 침침한 좁은 통로 속에, 마치 감옥에 가두어 놓고 한 사람씩 줄 서서 보라는 것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관람객이 하루 수천 명이 다녀간다고 홍보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며 미인도를 보려면 언제 다 볼 수 있을지, 더구나 침침한 조명 속에 노출된 미인도는 거의 한 사람씩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비좁기 짝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 여기 올린 ‘미인도’ 작품 사진은 현장 전시공간에 앞선 관람객이 열심히 집중해 관람하는 바람에 비키라고도 못하고 결국 정면에서 관람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진을 찍지 못하고 곁에서 잠시 바라보다 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책(여세동보)에서 미인도를 촬영해 사용한 것이다.)
미인도를 보면서 문득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드넓은 공간에 적절한 조명으로 수많은 관람객들이 동시에 관람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기에 혜원의 미인도 역시 모나리자보다 더 멋진 작품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유물이기에 당연히 모나리자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앞으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한 작품을 보기 위해 한국을, 아니 대구를 찾을 수 있도록 진취적인 발상을 갖고 지금이라도 미인도 전시실 공간 구획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봄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넷째, 훈민정음은 1446년(세종 28년)에 간행되었는데 한글로 작성한 언해본, 한문으로 쓴 예의본과 해례본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이 보유, 전시 중인 훈민정음은 그 3권 중 하나인 한자로 글자를 만든 이유와 사용예를 설명해 놓은 해례본이다. 이 점을 설명문에 포함해야 관람객이 이곳에 전시 중인 해례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섯째, 우리글 [한글]에는 수동태가 없다 그래서 각종 설명문과 안내글에 간혹 보이는 외국문장을 번역한 듯한 느낌의 수동태 문장들을 보는 것은 짜증 나는 일이다. 정말 잘못된 글쓰기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까지 보게 되다니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다. 더구나 한글 관련 전시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훈민정음> 설명글 첫째 줄에; “[훈민정음]은 오늘날 한글로 불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을 비롯해 원리 설명과 사용 예시를 기록한 책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한다.”라고 적었다.
한 문장에서 훈민정음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3번이나 나온다. 또한 “오늘날”이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단어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한글]이기에 말이다. 또한 “한글로 불리는...”이라고 수동태 문장을 사용했다. 한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글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자.
따라서 이 문장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 책은 우리가 [한글]이라고 부르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 설명, 그리고 사용 예시를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
이와 더불어 두 번째 예, [현대미술 프로젝트]의 내용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알찬 내용인지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그 제목과 소개 글은 꼭 눈여겨보기 바란다.
제목은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이라고 바르게 써 놓고, 그 소개글 2번째 문단 끝부분에, “... 이번 전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함께, 다시 읽으며 출발합니다. (중략) 공간에 펼쳐지고 소리로 지어진 세종의 애민정신을 새로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써 놓았다.
그러나 “세종의 애민정신은 누군가가 특정의 (전시) 공간에서 펼치는 것이고 소리로 만들었을 것이기에 당연히 ”펼치고 지은“이라고 써야 옳다.(수동태가 아닌)
그런데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읽다 보니 동시에 올바른 글쓰기가 안 되어 있다는 문제를 만난다. 즉, 행위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기에 행위의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을 “만들고 펼치는” 것이지 “펼치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 소리로 짓고 공간에 펼친 세종의 애민정신을 새로이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다.
여섯째, 탈오자를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으나 중요한 것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제발 “~로서...”(존재)와 “~로써”(행위)를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물로서...”이지 “유물로써...”는 잘못된 글쓰기이다. TV 자막에서 자주 보는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 우리글 쓰기가 어느 틈엔가 엉망이 되어버린 느낌인데 심지어 미술관 안내글과 설명문에서 조차 혼동을 한다면 안 되겠다. 이런 잘못된 철자법은 <여세동보> 책에서도 보이기에 아쉽기 그지없다.
마지막으로, 대구간송미술관 전시 작품 중에는 당시 서울시 교육감 이름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 보낸 <문교부가 국보지정 했음을 알리는 통지문>이 있다. 이 통지문에는 분명 문교부가 1958년 [한글]과 9점의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한다고 했는데, 한글해례본 설명문에는 1962년에 국보지정 되었다고 써 놓았다. 뭥미....???
이외에도 영문표기와 관련된 문제나 전시관람 동선이 정리되지 않아 다소 불편을 겪는 문제 등등도 앞으로 좀 더 생각해 보면서 고쳐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앞으로 대구간송미술관이 보여줄 노력과 수고에 미리 박수를 보내며, 국립박물관 못지않게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미술관이 되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