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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ul 14. 2023

#2 명상을 시작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유

짦은 명상 세션이 끝나고 케런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케런은 아내와 함께 하와이에서 온 노부부였다. 지금껏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유쾌하고 쾌활한 모습만 보여줬었는데, 질문을 할 땐 분위기가 퍽 달랐다. 어쩌면 70여 년을 살아온 그의 삶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중한 모습이었다. 케런은 말했다.


“그러면, 불안은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마음을 눌러 담아 한 그 질문에서 나는 짐짓, 아마도 그게 현재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고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명상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오히려 더 심한 불안을 겪었던 것일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닐 것이다. 사실 명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명상을 통해 더 불안해한다. 


물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통념’과 비교한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다. 보통 명상이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주변의 모든 감각적 소음을 차단하고 완전히 고요한 공간 속에서 명상을 해보면 썩 그렇지만은 않다. 조용해진 것은 물리적인 ‘외부’의 공간일 뿐, 반면 내부, 그러니까 내 마음은 되레 더 시끄러워진다. 오히려 명상을 통해 불안과 트라우마를 비롯해 부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케런이 아닌 어떤 이는 이런 이유에서 명상을 미워하기도 했다. 분명 자신은 평상시엔 그다지 특별할 것 없고 괴로울 것도 없는 마음으로 살아갔는데, 명상을 하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괴로운 생각과 감정이 ‘명상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명상을 저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케런의 물음에 내가 해줬던 답은, 그 불안이 ‘어디에서 온 건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있는 것이지만, 사람은 그 머리가 좀 더 좋다. 이성이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생각’은 공교롭게도 우리는 많은 곳으로 데려간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생각은 시공간을 넘나들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생각을 통해 우리는 과거로도 갈 수 있고 미래로도 갈 수 있다. 


문제는 머리 외에 사람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어도 기본적으론 ‘동물’이라는 바탕을 깔고 있으니, 모든 동물이 그런 것처럼 사람 역시 생존의 본능을 갖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생존의 본능이 다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의 본능이 없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수십만 년의 역사를 거치며 위험한 상황 속에서 생존하지 못 했다.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본능이 있는 이들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았고, 자손을 번식했으니, 그 ‘생존자’의 자녀인 우리들은 생존 본능을 역시 갖는다. 


‘불안’이란 감정이 생겨나는 이유는 그래서다. 불안이란 다른 말로 하면 ‘미래의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비’다. 생존 본능이 있어 늘 살아남고자 하고, 머리가 있어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니, ‘미래 상황’에 생존하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불안 외에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후회’다. 마음이 미래에 가 있는 불안과 반대로 후회는 마음이 과거에 가 있는 것이고, 그 과거로부터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원리는 같다. 후회를 하는 이유는 과거와 같은 실수를 또 하지 않아, 생존에 더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이렇게 보면 불안과 후회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불안과 후회가 있기에 우리는 사실상 살아남을 수 있던 셈이니, 사실상 고마운 것들이다. 물론 과거와 미래에 대해 좋고 긍정적인 생각만 해도 좋을 수가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생존에 유리하지는 않다. 생존 본능에 의해 우리의 혈액 속에는 기본적으로 ‘불안과 후회’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 99번 있었어도 단 한 번의 부정적인 일만 기억하고 후회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생존에 더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상을 하려고 들면 온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평상시 우리는 일을 하거나 취미 생활, 핸드폰, 지인과의 만남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명상은 그러한 모든 외부로부터의 자극의 전원을 잠시 꺼두는 일이다. 이에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본래 무엇이 있는 지를 마주보게 된다. 생존을 위한 본능. 불안과 후회를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그리하여 명상이 통 잘 되지 않고 자꾸만 온갖 불안과 걱정 따위에 허덕이고 있다면, 그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러하다. 만약 꼭 불안과 후회가 아니라 과거의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하나의 강력한 사건이 있었다면, 당연히 잔상은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불안에 대한 ‘대처법’이란 것은 사실상 없다. 혹은 초보자에겐 아직은 시기상조다. 처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이 ‘원래’ 우리 마음 속에 있었고, 사람을 무작정 괴롭히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꼭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아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불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불안이 생겼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불안만 안고 살까’라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혀도 그것이 ‘원래 그렇다’는 사실을 아니 더 이상 괴롭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명상이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실체를 바로 알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히려 대처를 해야 한다는 그 강박을 내려놓을 때, 불안과 후회 또는 트라우마 등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내려놓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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