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원류인 위빠사나를 향해서
'명상'이라고 하면 어딘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느낌이 들어 처음부터 부담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현대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마음 챙김 명상'이다. 요즘은 명상도 하나의 산업이 되어,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명상 법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명상은 사실상 '인스턴트'이고 정통적인 마음관리법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다. 비교적 정통에 가깝고 마음을 정말 치유해주는 명상을 원한다면, 그것도 '마음 챙김 명상'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마음챙김 명상도 워낙 보편화되고 여기 저기 퍼지다 보니 여기서도 변형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주로 마음 챙김 명상이란 걸 배우러 가면, 감각 하나 하나에 주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손끝의 감각, 어깨의 감각, 얼굴의 감각 등.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실 그런 감각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매 순간들을 보낸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어깨에 긴장이 차오르는데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 한다. 알아차리지 못 하니, 끌려간다.
그래서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현상들이 다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내 몸인데,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어떤 마음챙김 명상은 이 정도에서 끝난다는 사실이다. 명상이 삶에 온전한 보탬이 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아직 본질로 가지는 못한 것이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릴 때에는 한 가지 목적 의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이해를 잘 해야 되는 게, 목적 의식을 '의도적으로 갖고' 명상에 임해선 안 된다. 뭔가를 바라는 마음은 욕망이고, 욕망이 인간을 괴롭게 하니, 목적을 가졌다가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이 명상을 통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정도를 미리 알면 좋다는 것이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릴 때는 단순히 그 '감각만' 알아차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현재는 방편적으로 감각을 알아차리지만, 사실은 그 감각들이 갖고 있는 '실체'를 알아차리는 게 목적이다. 다시 어깨로 돌아와 보자면, 명상을 하면서 지도자가 '어깨가 어떤지를 알아차려봅니다'라고 하면 어깨에 나도 모르는 긴장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긴장은 어디에서 왔는가? 알아차려 보라는 말에 의해 비로소 깨닫게 된 거라면, 그 긴장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럼 그 긴장을 누가 만들었는가? 분명 이건 내 어깨고 내 몸인데, 왜 '내 것'에 내가 의도하지 않은 다른 것들이 들어와있냐 이 말이다.
이 꼬리를 물고 계속 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만든 게 아니었구나. 그럼, 이 긴장도 이 어깨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건 중요하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3가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우리의 삶이 종종(어쩌면 항상) 괴로운 이유는, 세상이 내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세상은 내게 이것이 아니라 저걸 안기며, 나는 저걸 피하고 싶은데 세상은 어떻게든 저것을 안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바'와 '현실'이라는 것이 서로 충돌하여, 내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지 못할 때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 '내가 원하는 바'가 사라진다면,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괴로움의 조건이 사라지는 셈이다. 조건이 사라지니, 괴로움도 자연히 사라진다.
이제, 비로소 이 '어깨의 긴장'을 '마음'으로 가져와보자. 처음에야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지, 그건 그저 연습일 뿐이다. 결국은 그 연습을 바탕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당신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어깨를 객관적으로 보았듯, 자신의 마음도 그런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다양한 것들이 있을 것이고 또 가지각색의 것들이 시시각각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할 것이다.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별 쓰잘데기 없는 잡념이 올라올 것이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면 최근의 걱정이나 불안, 슬픔, 분노 같은 것이 상재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라. 평상시 같았다면 그런 감정들, 특히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면 끌려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말고 그냥 가만히 보기만 하라. "아 너무 슬프고 힘들어" 하면서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게 아니라, 난잡해진 책가방을 잘 정리하고 준비물을 챙기는 아이처럼, 그 마음도 한 번 잘 챙겨보라. 어깨의 긴장이 내가 만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그리 된 것처럼, 마음의 작용들은 어떤가? 걱정이나 분노, 슬픔, 쾌락 같은 것들을 당신이 직접 만들어 냈는가? 아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불안되게, 슬프게, 화나게 만든 적이 없다. 모든 인간은 의도적으로나 은연중에로나 행복을 원하는데, 왜 그 행복에 방해되는 걱정이나 불안 등을 만들겠는가. 그런 것들은 그저 '저절로' 찾아오는 법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감정들의 원인과 조건이 과거에 있었어서, 그 조건에 의해 결과로서 생겨나는 감정일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당신이 만든 감정이 아니니,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해서 '당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당신은 한 가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감정도 내가 만든 게 아니었구나. 그럼, 이 슬픔과 불안도 사실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금껏 해왔던 무의미한 노력을 안 하게 된다. 슬픔이나 걱정 같은 게 올라올 때 그것을 이겨내고 없애버리려던 노력들. 해봐야 소용 없고,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던 노력들.
그런 무의미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껏 당신을 괴롭게 만들었던 건 슬픔이나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감정에 휘둘린 상태였으며, 거기서 벗어나고자 했던 발버둥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