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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un 12. 2024

#7. 위험하다고 알려진 인도 여행의 실체

아무런 계획 없이 인도에 도착하면 생기는 일

여행을 시작한지 한달 반이 되도록 한 번도 생존에 대한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난생 처음의 해외 여행이었지만, 어떻게든 무엇이든 알아서 잘 되었다. 첫 여행지였던 베트남부터 그 다음 라오스, 태국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남아 3국 여행 후 가게 될 인도는 얘기가 전혀 달랐다. 인도는 아직 가지 않아도 곧 거기에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두려웠다. 온갖 걱정이 들끓었다.  


아무래도 미디어에서 들은 온갖 소문의 영향이 컸다. 인도는 말도 안 되는 범죄가 들끓고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도 부족한 나라라는 것. 물론 미디어를 있는 그대로 믿을 건 없다. 다만 자극적인 것들은 무릇 마음에 오래 남기 마련이니, 인도에 대한 인상도 은연중에 그런 쪽으로만 생겼다. 물론, 그렇게 두려웠다면 인도는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두려움을 회피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역시 피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시에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마치 인도는 내가 필연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나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인도에 들어가기 전의 나는 미련했다. 뜬 소문들에 의해 그렇게 두려웠다면 정확한 정보를 찾아봤으면 되었을 것이다. ATM 기기는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는지, 내게 필요한 것들은 어떻게 구하면 되는지 등. 하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인터넷 정보를 통해 돌아다니는 것은 영화를 볼 때에 결말을 미리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여행에서라면 가급적 모든 문제는 현장에서 해결하는 걸 선호했다. 무릇 여행의 재미는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움과 준비하지 않아도 삶이 이행되는 여유로움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딱 한 가지 정보는 미리 준비했다. 내가 입국하게 될 도시인 콜카타의 숙소였다.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한 한국인이 인도를 이미 여행했다 했고, 자신이 콜카타에서 머물렀던 숙소를 내게 알려줬다. 숙소의 이름은 투어리스트 인(Tourist Inn). 나는 그 이름 하나만 달랑 들고 방콕 수완나품 공항을 떠나 인도로 향하는 에어인디아 항공기에 올랐다. 


실망은 기대에서 오니,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걱정하는 삶의 유일한 장점이다. 걱정을 최악을 생각하는 것이니, 현실은 늘 최소한 그보다는 낫다. 인도에 대해 워낙 걱정이 많았던 나는 다행히 실망할 일도 없었다. 워낙 촌놈이라 사실 콜카타 공항 활주로에도 그 유명한 ‘인도 소’가 버젓히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으나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여느 나라 여느 도시 공항과 마찬가지로 잘 갖춰져 있었다. 일주일 정도 전부터 인도에 대해 걱정하느라 온 몸에 둘러 입었던 긴장의 끈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입국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돌리면 주변에 대도시가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인천공항처럼 완전히 교외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마침 공항 입구에는 여러 대의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일단 인도도 콜카타도 초행길이니 내 입장에선 택시를 타는 게 유리했다. 하지만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 택시는 사치였고, 설상가상 공항 ATM이 그날따라 죄다 고장이라 현찰도 충분하지 않았다. 


저 멀리 버스가 모여 있는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행선지는 당연히 숙소였다. 여행을 하는 데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숙소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도 숙소다. 지난 한 달간 동남아를 배낭여행해보니 몸소 겪은 사실이다. 숙소는 밤 늦게 찾으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 시내를 배회하는 건 몸도 피곤한 일이다. 하물며 그때는 오후 여섯 시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초저녁이었다. 이 ‘위험한’ 인도 땅에서 나는 일단 ‘내 구역’부터 확보해야 했다. 삼삼오오 모여 대기 중인 버스 기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버스 투어리스트 인 가나요?”

지금까진 나 자신에게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을 뱉고 나서야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콜카타는 오늘날 인도 전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규모의 도시다. 인구수만 해도 2천만이 훌쩍 넘는, 단일도시만으로 서울과 경기 전체의 인구를 다 합친 규모다. 그러니까 내가 한 짓은 이를 테면, 인천 공항에 내려 공항 버스 기사 님에게 ‘관광 여인숙’으로 가는 게 맞냐고 물어본 셈이었다. 같은 이름의 숙소가 그 대도시에 얼마나 많겠으며, 또 작은 숙소를 이름만 댄다고 해서 어찌 일반 시민이 알겠는가. 차라리 그 숙소가 어느 동네에 붙어 있는 지라도 알면 나았을 텐데, 나는 그조차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당연한 얘기다. 다만 그때의 나는 얼마나 생각이 짧았던 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아마 그 버스 기사도 그런 황당무계한 질문은 생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버스 기사가 오리무중에 빠지자 주변의 다른 현지인 버스 기사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인도인들에겐 거리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와 대놓고 구경하는 특성이라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투어리스트 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될 건 여전히 없었다. 투어리스트 인에 꼭 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대충 아무대나 내려서 괜찮은 숙소를 잡으면 됐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잡는 건 사실 구멍가게에서 생수를 하나 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그렇게, 나도 내가 어디서 내리게 될 줄을 모른 채 버스에 올랐다.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는 벌써 땅거미가 져 공기가 온통 검었다.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인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어두운 창밖에는 드문 드문 노란 할로겐 등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온갖 ‘것’들이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들개, 소, 쓰레기, 까마귀같은 것들. 사람들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많았다. 윗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남자들, 배를 완전히 까고 사리만 입은 채 다니는 많은 여성들, 벽에 대놓고 오줌을 누는 이들, 빨간 침을 뱉고 있는 사람들. 또 무엇보다 견딜 수 없이 시끄러웠다. 한 달 전에 머물렀던 베트남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교통 소음이었다. 곳곳에서 생전 맡아본 적 없는 온갖 향신료 냄새가 진동했다.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고, 혼돈의 구렁텅이 한 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이 내 눈에는 그저 공포스러웠다. 다만 버스 창밖으로 보고 있으니 안심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머잖아 창밖의 ‘그’ 사람들이 버스에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도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은 마치 송곳처럼 날카로웠고, 마주칠 때마다 내 영혼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왠지 저 사람들이 이 버스에서 내게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이윽고 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였다. 일단 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 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일단 도망가는 것. 물론, 그때 버스가 지나고 있던 곳이 어디인 줄 나는 모른다. 근처에 숙소가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내리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인한 신경 쇠약으로 먼저 죽을 것 같았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도망쳐 온 곳에 낙원은 없었다. 덜컥 내린 곳은 어느 시장의 한 가운데였는데, 버스 밖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여전히 강렬한 인상과 눈빛의 인도인은 어디에나 있었다. 뭐라도 팔고자 목청껏 소리치고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는 상인들. 외국인에게 사기를 하도 많이 쳐서 절대 믿으면 안 된다던 그 인도 사람들. 공포는 오히려 버스에 있을 때보다 더 커졌다. 그런데 그 공포를 마주하니 나는 본능적으로 안식처를 갈구했다. 말도 문화도 음식도 사람도 아무 것도 아는 것 하나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것. ‘투어리스트 인’이었다. 당초 공항에서 버스에 오를 땐 아무 숙소라도 가야지 싶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태국에서 알게 됐던 여행자가 알려준 ‘투어리스트 인’이 전부였다. 내가 어디서 내린 줄도 모르고, 투어리스트 인이 어디 붙어 있는 줄도 모르지만, 나는 어떻게든 거기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일단 아무 방향으로나 걷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투어리스트 인’을 아느냐 물었다. 물론 두려웠다. 하지만 자칫 조심스럽게 약한 태도로 물으면 누군가 얕보고 사기라도 칠까 걱정이 더 앞섰다. 잔뜩 쫄아 있는 속마음을 숨기고 짐짓 당당한 태도로 물었다. 그러나 아예 다른 동네에서 내려버린 건지 누구도 투어리스트 인을 알지 못 했다. 그 즈음 되니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 어둠도 깊어지는데 발만 동동 굴렀다. 어쩌면 이 방향이 아니라 나는 반대로 갔어야 했던 건지 모른다. 그런데도 워낙 두려운 마음이 커서 그 외에 다른 대안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투어리스트 인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올림푸스 신전같은 허구의 공간일 지도 모르겠다는 의심마저 피어오르려 했다.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응답이 돌아온 건 한 서른 사람 정도에게 물었을 때였다. 투어리스트 인을 묻자 그 인도인은 내게 되물었다. 


“사다리칫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을 말하는 거냐?”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 했다. 영어 같긴하지만 인도인의 독특한 발음이었다. 아무튼 ‘사다리칫.’ 도대체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고, 그 발음이 정확히 맞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 인도인은 내가 지금껏 말은 건 이들 중 최초로 어떤 반응이라도 보인 거였다. 꼭 완전범죄에 필적한 상황 속에서 작은 실오라기라도 하나 찾은 형사가 된 것 같았다. 맞든 틀리든 그때는 그게 내 유일한 희망이어서, 뭔진 모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봤다. 남자는 팔을 뻗으며 사다리칫은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내 진행방향과 동일했다. 


아무래도 ‘사다리칫’이란 건 투어리스트 인이 있는 동네 이름인 것 같았다. 실제로 효과도 좋았다. 투어리스트인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사다리칫은 거의 모든 이들이 알았다. 그렇게 묻고 물어 사다리칫 방향으로 족히 한 시간 반 정도는 거의 헤매듯 걸었다. 그리고 그때, 드디어 콧수염 인도인이 구세주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짙은 콧수염이 인상 깊고 키는 멀대 같이 큰 현지 남자였다. 그 인도인은 내가 묻기도 전에 내 앞에 나타나 길을 먹아 서서 말했다.


“너 사다리칫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을 찾는 거지?” 

나는 당황했다. 어찌 이 처음 보는 인도인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지금 생각해도 그건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런데 그때는 반가운 마음이 사실 더 컸다. 물론 그 남자는 사기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기꾼이건 뭐건 그때는 일단 살아남는 게 내겐 더 중요했다. 뿐만 아니라 그 콧수염 인도인은 자기도 지금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대뜸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물론 함부로 낯선 어른을 따라가는 건 위험하다. 나도 어른이긴 하지만, 여행지에서 우린 대개 어린이가 된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냥 따라 갔다. 꼭 그 남자 밖에 내가 믿을 게 없다기 보다는 자칫 위험해지면 알아서 빠져 나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콧수염과 함께 한 이십 분 남짓 걸었을까. 이번엔 웬걸 다른 인도인 여성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어찌된 일인지 그 역시 내가 투어리스트 인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도 이 사람 저 사람 묻고 다녀서 이 근방에 웬 어리숙한 동양인 남자가 배낭을 맨 체 ‘투어리스트 인’을 한 시간 넘게 찾아 헤맨다는 게 소문이라도 난 건가. 그런데 어찌 그 소문은 겁에 질려 뛰듯이 걷는 나보다도 걸음이 빠른 것인가. 아무튼 그 여성은 나를 향해 고래 고래 소리를 쳤다.  


“그 남자는 거짓말을 치는 거야! 투어리스트 인은 그 쪽이 아니라 저 반대편으로 가야 해!”

나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여성이 일컫는 남자는 나를 가이드해주고 있는 이 콧수염 인도인이었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현지인 여성이 저렇게 소리까지 치며 말하니 조금 전까지 믿고 따르던 이 남자도 갑자기 유괴범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 여자는 뭐하러 그렇게 소리를 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럼 도대체 이 남자는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고 있던 것이며, 그 의도는 무엇인가. 또 저 여자는 내가 가는 곳을 어떻게 알고, 이 남자랑도 생면부지 같은데 어찌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두 남녀 간에 언성이 오갔다. 그 모습에 콧수염 인도인에 대해서도 신뢰가 거의 바닥났다. 더 화내는 모습에 의심은 두터워졌다. 그 광경에 주변의 다른 인도인들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나로선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이랬다간 자칫 내 정체도 소문으로 퍼져, 동네 구석 구석 숨어 있던 사기꾼들이 나를 어떻게든 벗겨 먹으려 뱀처럼 접근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방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가장한 검은 손은 여기 저기서 침범하게 마련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자리를 피했다. 


벌써 밤 아홉 시였다. 인근의 모든 인도인은 두 남녀가 싸우는 곳으로 몰고 갔으니 거리는 되레 한산했다. 하지만 한산해진 거리는 그 나름대로 또 스산했다.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걷고 또 걸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익숙한 영어 문구가 보였다. 하얀 간판에 파란 글씨. 말로만 들었던 ‘HOTEL TOURIST INN’이 정말 있던 것이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드디어 이 위험천만하고 두려우며, 모든 것이 낯선데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믿을 구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아직 문이 열려 있었고, 바로 리셉션으로 향했다. 키가 멀대같이 큰 매니저가 의뭉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행색이 배낭을 매고 있었으니 딱 봐도 방을 구하러 온 사람이었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선수쳤다. 


“오늘은 만실입니다. 방 없어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를 찾으려고 몇 시간을 고생했는데. 하지만 몇 번이고 되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하늘이 두쪽나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와도 오늘만큼은 방이 없을 기세였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숙소를 찾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왔다. 걷다 보니 골목길 이름을 알리는 표지판이 한쪽에 붙어 있었다. 투어리스트 인이 있던 그 골목의 이름은 ‘서더 스트릿(Sudder street)’이었다. 서더 스트릿, 서더 스트릿, 서더스릿, 사다스릿, 사다리칫. 사다리칫의 정체는 바로 ‘서더 스트릿’이었다. 




* P.S / 콜카타에 도착한지 사흘째 되던 날, 거리에서 우연히 그 멀대같은 남자를 다시 마주쳤다. 남자는 ‘그치, 내가 말한 방향으로 가니까 투어리스트 인이 정말 있었지?’라며 내게 아는 척을 했다. 나는 내심 싸움의 틈에서 그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빠져나왔던 게 억울했다. 그는 미안하다면 잠깐 따라오라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알고 보니, 그는 외국인에게 열심히 영업한 골동품 가게 사장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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