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츄어 네임?
요즘 뉴욕으로 출장 다니며 하고 있는 새 프로젝트의 매니저는 Siva라는 인도 아저씨이다.
입 주위의 콧수염과 볼록 나온 배는 슈퍼마리오를 연상시키고 인심도 참 좋지만, 업무 방식에 있어선 나랑 코드가 약간 안 맞는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수 있는 일들을 꼭 참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짜증을 나게 할 때면 난,
헤이 씨~바, 아이 갓 디스 (씨~바 형님,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라고 하는데 (물론 웃으면서) 이게 참 재미가 쏠쏠하다.
고딩때 미국에 처음 와서 잠깐 들었던 ESL 수업시간에는 Jodat이라는 아프가니스탄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같은 반 한국애들은 모두 그 친구를 부를 때 "쪼다!!"라고 힘차게 외쳐대곤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뜻이 뭔지 알게 된 이 친구는 그냥 평소대로 이름을 불러도 큰 두 눈을 흘기며 싫어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내 이름도 비슷한 고충(?)을 겪었는데, Giebum 의 bum 은 영어로 노숙자, 부랑자라는 뜻이니, '얘는 뭔 이름이 이런가' 싶었을 거다.
또 몇몇 짓궂은 미쿡애들은 내 이름을 부를 때 쥐봥 (G-Bong)이라 바꿔서 부르며 재밌어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마약 연기를 들이마실 때 쓰는 기구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난 그걸 역이용해서 한동안은 그 '쥐봥'이란 이름을 써먹으며 쉽게 친구들을 사귀곤 했다. (이름만으로 친구들을 사귀다니 참 순수한 시절이었다)
이렇듯 이름 석자가 주는 영향이 꽤나 크다는 걸 몸소 느껴가면서, 간간이 공상에 빠질 때면 난 미래의 자식에게 지어줄 이름을 생각해보곤 한다. (일명, 미래의 배우자가 뭐라 생각하든 무대뽀 김칫국 마시기 놀이)
우선, 글로벌 시대이니 영어/한국 이름 둘 다 발음하기 편한 이름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시헌이라고 한국 이름을 지으면 영어 이름을 Sean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내 이름 Giebum 은 독일식으로 스펠링을 해서인지 제대로 발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계절로 이름을 지어도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난 가을을 좋아하니 가을이.
부를 때마다 청량한 하늘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근데 전 씨라 전가을이 되어버린다.
스펠링도 문제다. ga-eul이라고 적으면 개울?이라고 발음할 수도...
어쨌거나 기범이라는 두 글자의 발음이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선 이상한 단어가 아니길..
epilogue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詩 "꽃"-
201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