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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Feb 20. 2022

홍상수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이수현작가의 '유리젠가'를 읽고

이수현의 소설에는 차가운 현실이 놓여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체 연기를 하는 취업준비생, SNS로 알게 되어 사랑하게 된 남자에게 사기당하고, 버려진 30대 직장인 여성, 코로나로 실직하고 수입이 없어져 하루하루가 힘든 젊은 커플, 가업을 잇겠다는 자신의 뜻에 반해 가족들의 만류에 직면하여 곤혹스러운 젊은이. 

소설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거나, 그랬거나, 그럴법한 보편적인 삶의 문제들을 핍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로 인한 고통의 시간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 같은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히어로의 완벽한 솔루션은 없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의 깜냥으로 애면글면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며 버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함으로써 그 문제를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의 방식들인 것이죠. 

이 소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습니다. 조용하고 담백하고 깔끔합니다. 아주 극적이거나 대단한 반전의 묘미는 없지만, 그래서 공감의 힘이 더 생깁니다. 공감이 생기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바로 내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소설은 나의 지금을 담은 유튜브 브이로그처럼 느껴집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어, 내가 그런데…?’,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들로 확산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재미가 더 쏠쏠했습니다.

코로나나 대선으로 어수선하고 요동치는 요즘, 휩쓸려서 붕 뜬 채 지내지 말고, 거울 앞에 앉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다 읽은 뒤, 소파에 기댄 채 무반주 첼로로 연주되는 바흐의 음율에 몸을 맡기고 싶어지게 하는 소설입니다. 


2022. 2. 20.

놀자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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