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9단들은 다 아는, 중년남들은 도통 모를~
택배로 받은 김치들은 비닐봉지에 싸여 있다. 냉장고에 보관하려면 김치통이나 반찬통에 나눠 담아야 한다.
그게 뭐…?
안 해본 남자들은 모른다. 그 일이 얼마나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인지…!
대개 구입하는 김치들은 2kg~5kg 짜리이다. 다루기 꽤 많은 양이다. 김치 양과 통의 용량을 감안하여 적절한 통을 준비해야 하고, 냉장고에 넣어 보관할 건 큰 통에, 당장 먹을 건 작은 통에 따로 나눠 담아야 한다.
어려운 건 김치가 든 비닐봉지에서 통으로 옮겨 담을때, 고정적인 형태를 갖지 않은 봉지의 자유운동을 잘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하면, 김치 뭉터기가 확 나와서 당황할 수 있다.
우선, 통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넘침이나 부족함이 생기지 않도록 양을 가늠하는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김치 든 비닐봉지를 쥔 손의 세기조절이 요구된다. 김치를 부을때 손가락마디마다 순차적으로 힘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며 흐름을 타면서! 비닐봉지에서 적정한 양의 김치만 내보내 통안에 정확히, 그리고 알맞은 양만큼 넣게 하는게 보통의 기술은 아니란 얘기다.
이 일을 제대로 해 냈는지 잘못 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KPI (Key Performance Index)는 비닐봉지에서 김치통으로 옮겨 닮을때 김치국물을 얼마나 흘렸나 하는 점이다. 국물을 흘리지 않고 통에 온전히 부어 담는게 핵심역량인 것이다.
경험이 일천한 남자들은 십중팔구 부엌 싱크대를 온통 붉은 색 김치국물로 도배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구입한 김치가 포기상태라 도마에 두고 칼로 잘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난감하네~~
아마 부엌은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토마토축제를 방불할 정도의 붉은 김치국물 난장판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어려운 작업을 내가 해냈다!
김치가 한 종류도 아니고 배추포기김치 3kg, 열무김치 3kg, 총각김치 2kg 이나 되는걸…
1회용 비닐장갑과 도마와 칼에는 김치국물이 묻었지만…씽크대 깔끔하다! 부엌 깨끗하다!
내가 달성한 이 성과를 자축하기위해 술을 한잔 하고 있다. 소주에 깔라만시와 토닉워터를 넣고 블렌딩한뒤 얼음을 얹었다. 아 시원하다! 난 이 상쾌함을 느낄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세종류의 김치를 놓고 자체 품평회를 하고 있다. 다루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세가지 김치 모두 맛있다…! 보람찬 하루가 지나고 있다.
20220627
살림사는 남여 응원하는 놀자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