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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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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Feb 28. 2021

일상에 다시 적응하기 위해

할머니집에서 자고 나와 엄마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아직 집에 가기 겁나고 나는 아직 집에 돌아간 엄마가 어떻게 느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휴일이라 형부와 외사촌조카들이 집에서 쉬고 있을 날이었다. 엄마는 나랑 새로 사야하는 이불 얘기를 하고 있다가 쿠팡을 보고 뭘 살지 보고 있다가 엄마는, 중앙시장에서 파는 이불이 어떨까? 시장보단 인터넷이 싸지, 그럴라나? 그러다가 중앙시장 가서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했고, 보통 같으면 하지 않을 얘기라서 지금 언니네 집에 가기도 난처한 상황 때문이구나 그제야 생각이 들어 네비에 목적지를 시장으로 찍었다. 머릿속엔 어제부터 일요일 밤에 마감인 채용공고에 지원하려면 오늘 내일 다 시간을 내도 모자르겠지, 생각했지만 엄마와의 일정을 오후쯤엔 끝낸다면 그래도 할 수 있을거야 나를 다독였다.


여동생은 휴가 중에도 출근을 해야되는 상황이었고, 남동생은 할머니네 집에선 자고가기 싫다며 할머니의 만류도 다 뿌리치고 집에 돌아갔다. 나는 출근할 직장도 없고, 갈 곳이 없어진 엄마에게 할일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다른 얘기를 하다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큰딸이니까 너가 참아, 그런 얘기는 안하겠지만 내가 맞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맞이노릇을 하게 되는거라는 얘길했다. 지난달까지 했던 상담이 떠오른다. 상담사의 말처럼 부모님과 가족의 어떤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거웠던 나, 정부지원이 중단돼서 갑자기 끝나게된 마지막 상담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 하니 그 상담사는 나에게 "어떡해요 ㅇㅇ님, 힘들겠어요" 했는데. 상담이 끝난 후에 나의 무거운 짐을 알아보게 됐지만 정작 나는 지금 힘들다 생각해도 되는걸까? 얼도당토 않은 질문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이전처럼 엄마와 데이트를 알차게 한 것 같지만 엄마도 일상에 다시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보통 같으면 머리를 하고 싶다, 옷을 사고 싶다 하지 않는 사람인걸 알기에 엄마의 행동과 말들에 민감해진다. 어쩌다보니 마지막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정산을 끝내고 보니 저녁시간이 되었고 언니네집에 돌아와 씻고, 조카가 카드게임을 가져와서 깔깔 웃으며 같이 놀고, 이 게임은 나이불문하고 재밌게 할 수 있겠네 하니 그러게 아빠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그리고 조카는 오늘은 할머니(우리엄마)와 나랑 같이 자겠다고 한다.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잘 잊고 지나갔네, 하고.


그냥 자려다가 오늘도 적지 않으면 하루하루 기억은 퇴색해 갈 것이 퍼뜩 무서워져 적는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엔 아빠의 임종을 지켰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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