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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Oct 11. 2021

Here and Now를 사는 법이란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는 순간, 글쓰기에 대한 단상

    며칠 생각해오던 두꺼운 겨울 이불을 빨래방에 넣어두고 한시간쯤 운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낮엔 뜨겁더니 하루밤새 날씨가 곧 겨울이 올거란다. 오후 5시쯤 집을 주섬주섬 치우고, 이불 두개를 부둥켜 안고, 저금통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두둑하게 챙겨서 나왔다. 이보다 더 추워지면 운동도 못하지, 요즘 같은 날씨에 운동해야지, 생각하며 불광천을 뛰기 시작했다. 조금 작은듯 했는데도 급해서 샀던 내 휠라 운동화, 아무리 뛰어도 익숙해지지 않아 당근마켓에 팔아버려야지 생각하며, 그리고 또 그 다음 생각, 생각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속으로 또 시작됐군! (잡)생각의 향연이- 대부분은 걱정거리이고, 해결되지 않아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면, 내 몸은 지금 산책로를 헉헉이며 뛰고 있지만 내가 지금 여기 없는 기분이 든다.


Here and Now를 살자

    무슨 좌우명처럼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대체로 지금 하고 있는 일(해야 하는 일)에 쉽사리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 것은 아주 오래됐다.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주 떴던 ADHD 증상일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봤을 정도이다. (아, 내가 그 영상에서 눈물 핑 돌만큼 공감됐던 내용은, ADHD임에도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이렇게 애써온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견다는 인터뷰어의 말이었다.)

    어쨌든 내 머릿속에는 항상 수많은 말풍선들이 떠다닌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만 좀 떠들어! 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고, 자주 머리를 흔들어서 (물리적으로), 내 눈이 고정되어 있는 종이나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기 위해 생각을 멈추곤 한다.


생각해 보니 요즘 나, 멍 때린 적이 없다.

    멍 때리는게 쉽지 않은 나.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유튜브 먹방이나 인스타그램을 틀거나, 사야되는 물건을 쇼핑하거나, 읽기로 하고 안 읽은 책이 뭐가 있더라? 청소를 해야되지 않나 둘러보고 그런 식인 것 같다. 가장 멍 때리기 좋은 시간은 출퇴근 위해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탈 때나 고속버스를 탈 때인데 그 시간에 난 음악을 들어야지, 뭐라도 배우기 위해 세바시 강연이라도 들어야지, 이런 생각에 빠진다. 음악을 들으면 좀 나은가? 노랫말과 악기소리는 또 과거의 좋았던 또는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고... 아, 돈을 좇는 사람만이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빈틈없이 채우려고 애쓰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도태되고, 성장하지 못하고, 낙오할 것이라는 무의식의 불안 아닐까?


글을 쓰며 생각을 뱉어내야겠다.

    요즘 글이 정말 쓰고 싶었다. 네이버 블로그는 거의 10년 넘게 내 일기장이었고 1,362편의 글을 적어두었다. 적는 것이 생각을 비우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 뱉지 못하니까 계속 쌓였나 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영국드라마 셜록홈즈 에서 사랑하는 장면 중, (아마도) 시즌 첫화 왓슨이 전쟁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에게 블로그 일기 쓰는 것을 제안 받는다. 내가 지금 겪는 여러 트라우마들,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기억들, 그리고 지금 새롭게 느끼는 소중한 사람들- 그것들을 모두 일기에 뱉어내어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새로 성장해야 할 길을 찾아내고, 묵은 것들은 정리하여 비우고, 그래서 스스로를 치료해야겠다.


이것이 내가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갑분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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