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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Mar 24. 2019

인생 첫 찜질방

 나의 첫 드라마는 항상 촬영이 늦게 끝나기도 했지만, 집에 다녀오기 애매한 시간에 촬영을 끝내곤 했다. 1시에 끝나 서울로 올라오면 2시가 되고, 집에 가면 2시 반 정도 됐는데, 콜타임은 항상 아침 7시였다. 잠을 자야 하는지, 눈만 감았다 떠야 하는지 아주 모호한 용도의 시간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잠이 들었고, 콜타임에 늦지 않게 전력을 다했다.


 유난히 더운 날들이 이어졌다. 센추리 스탠드를 하나씩 들 때마다 흐르는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갔고, 내 손은 항상 무언갈 들고 있었기에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날은 유독 더웠고, 그랬기에 땀이 분출했다. 촬영은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부터 시작했고, 찍어내야 할 씬은 최소 15씬 이상이었다. 저녁, 밤까지 이어지는 촬영에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너무나 찜찜한 상태였기에, 카메라의 롤이 도는 걸 반복하는 걸 보고있기가 힘들었다.그날은 처음으로 새벽 4시에 촬영을 끝냈다.  


 연출, 제작부 형들은 마지막 컷을 찍을 무렵부터 세트 밖에서 줄창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다음날 콜타임에 대한 얘기, 촬영 분량에 대한 얘기, 방영 일정에 대한 얘기 등이 나돌았다. 난 그저 막내였기에 듣는 것에 반응하고 대꾸하고 생각을 표할 수 없었다. 잠을 자고 싶을 뿐이었다. 아니, 눈을 좀 붙이고 싶었다. 그들은 마지막 컷이 오케이가 되자 큰 소리로 스탭버스는 근처 찜질방으로 간다고 했다.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었던 걸까. 난 20대 중반에 이르도록 찜질방에 간 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친구들끼리 어울려 찜질방에 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직접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찜질방은 정말 말 그대로 온통 열기를 뿜어내는 '불가마' 같은 곳에 마냥 앉아 땀을 빼는 곳이라 생각했다. 찜질방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더운 걸 싫어했기 때문이었는지, 선듯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관심도, 의지도 없었던 찜질방 체험을 드디어 강제로 하게 되었다.


 장비를 들고있지 않았음에도 몸이 무거웠다. 어깨에 콤보스탠드가 바짝 붙어있는 것 같았다. 발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지만 그동안 짓눌렸기 때문인지 발바닥이 살짝 아렸다. 찜질방 신발장에 신발을 집어넣고 대리석 같은 딱딱한 바닥을 걸어나가는데, 발이 아팠다. 살짝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옷을 벗고 일단 몸을 씻었다. 틀자마자 뜨거운 물줄기가 가슴을 강타했다. 그럼에도 시원했다. 고개를 들이밀어 머리칼을 적시고 얼굴을 물줄기쪽으로 향했다. 한여름에 뜨거운 물이 그렇게 시원하고 포근한지 몰랐다. 마냥 시원해서 한 5분 간 물줄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벼락같이 몸을 씻고는 탕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목욕탕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지만,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발을 담구고 서서히 몸을 담궈가는 와중에 피로가 몰려왔다. 긴장을 놓으니 몸이 출렁출렁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양팔을 팔꿈치까지 테두리에 걸치고 눈을 감았다. 아니, 감겼다. 퍼스트형이 깨우지 않았으면 콜타임 때까지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고, 속옷을 입고, 찜질방 옷을 입었다. 누가 입었던 옷이었기에 찜찜했다. 발걸음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수면실로 향하고 있었다. 


 콜타임은 7시였다. 보통 6시인데 7시라니. 한 시간이나 늘려줘서 참으로 감사했다. 무려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다니. 그렇게 첫 찜질방은 기절하듯 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콜타임이 되어선 써드형이 뺨을 때려줬기에 일어날 수 있었다. 현장으로 가서 장비를 내리고 촬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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