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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Mar 01. 2022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 2

 휴식기에 내가 한 일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자소서를 쓰거나, 촬영을 하거나, 토익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거나. 촬영이 있는 날을 빼면 자기소개서인지, 내 인생을 본뜬 사이비 소설인지 모를 글들을 써내려갔다. 생면부지 남에게 나에 대한 ‘대강의’ 혹은 ‘간략한’ 정보를 주기 위해. 대체로 콘텐츠 업계에 속한 회사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대기업, 스타트업 등 가리지 않았다. 경력기술서를 처음으로 쓸 때,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며 새삼스러웠다. 그래도 이 정도나 했구나. 

 필모가 참으로 아까웠다. 그래서 갈팡질팡 했다. 업계 선배들과 비교하기엔 하찮을지 몰라도 기업에선 나의 피와 땀을, 심지어 병력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어떻게 일했는데, 이 필모를 갖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필모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겠지, 그래도 경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 회사의 연봉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생각했다. 거리에서 스치는 사원증을 패용한 수많은 직장인들과 동류의식을 나눌 일이 곧 찾아올 것으로. 그렇게 하루에도 몇 군데씩 자소서를 넣었다. 최소 한 달 동안은 촬영을 하거나 주말에 휴식을 가질 때 빼곤 구직에 매진했다. 멍청하게도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즐거웠다. 나도 평범하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순진한 생각이 와장창 깨지게 된 건. 불합격 통보, “안타깝게도 함께하실 수 없게 됐습니다”와 함께 연락없는 회사들도 많았다. 나름 열심히 했고, 토익 점수도 끌어올려 봤지만 역시나 취업난엔 예외가 없었다. 대책없었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편이든 광고든 돈을 벌면서 준비를 하자고 생각했다. 

 단편에 이어 영세한 규모의 바이럴 광고 프로덕션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았다. 감독으로 나가는 거였으니. 하지만 난 그걸 임시직이나 알바 정도로 생각했다. 하루빨리 취업을 해서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 콘텐츠 업계 현장을 경험했던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달 정도 더 기다렸을까. 포기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스펙이 좋은 사람들도 경쟁에 지치는 게 현실인데, 어딜 감히 나 같은게 언감생심 하며. 앞으로 다신 하지 않겠다 생각한 드라마판에 다시 손을 벌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맥들은 거의 끊어버리다시피 했고, 다시 돌아간다는 게 너무나 싫었다. 스탭버스 생각을 하면 메스꺼웠다. 

 결국 궁리를 짠 건 전부터 생각했던 ‘영화’였다. 드라마를 하기 전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갖고있었던 걸 억지로 끄집어냈다. 예전엔 큰 뜻이 있었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 접었고 막다른 길에 들어섰기에 꺼내든 그런. 어쨌든 그땐 영화를 하고 싶었고, 영화만 보였다.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니까. 

 단편영화 촬영을 통해 알게 된 형에게서 제안이 왔다. 이전에 제의를 받긴 했으나 취업을 해야겠단 일념으로 거절을 했던 터라 웃긴 그림이 되었지만. 그렇게 영화계에 들어가게 됐다. 다행히 크랭크인 까진 시간이 꽤 남아있었던 터였고, 밀릴 거로 생각했기에 여행이나 다녀오자 생각했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욕실 거울을 봤다. 얼굴에 살이 조금 붙은 게 보였다. 몸무게를 쟀는데 입원 당시의 무게보다 3킬로 정도 쪄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열의에 항공권을 예약하고, 여행 책자를 뒤지며 계획을 짰다. 열망하던 미래는 모래알 같았다. 거부하던 미래가 다시금 엄습했다. 잠시 외면한 채 베를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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