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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un 23. 2024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

영화 늑대 아이 & 다큐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연히 사랑하게 된 대상이 늑대 인간이라니. 100년 전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늑대와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최후의 존재. “세상엔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랑의 결실로 두 아이를 출산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남편이 사망하게 되고, 이후 어린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고군분투한다.       



인간도 키워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늑대인간이라니. 아이들이 아프면 소아과를 가야 하나, 동물병원을 가야 하나.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들어둘걸. 아이들은 흥분하면 늑대의 모습이 되고, 산책을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개에게 으르렁거린다.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아 아동학대로 의심받기까지. 이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할까.      



도시에서의 삶, 시골에서의 삶.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자신이 누구인지 아직 인식조차 없는 아이들. 그녀는 불필요한 좌절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시골로 이사를 결정한다. 그렇게 존재가 존중받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늑대가 되었다가 인간이 되길 반복하며 고민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과의 경험을 늘려나가며 마침내 나를 어떤 환경 속에 둘지 결정한다. 만약 계속 도시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느라 얻은 상처들로 대상없는 미움만 가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달래느라 ‘나’를 찾고 ‘나다운 삶’을 선택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으리라.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아이들은 태어나보니,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다. 맑고 낙천적인 나의 부모. 아이들은 그들이 부끄럽지 않고 부모 자신들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건만,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는 것만 같다. 어른들이 ‘친절’이라는 미명하에 행하는 동정 어린 시선과 오만한 조언들. 침묵의 세상에서 착하고 올바르게만 살아야 할 것 같았을 아이들. 때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열심히 싸워보고, 너무 버거우니 그만 멀어지고도 싶다. 어른이 되면 조금 달라질까. 결국 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두어 독립을 시도하고, 또래보다 앞서 어른이 되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 스틸컷, 이길보라 감독의 부모, 동생



멀리, 가능하면 더 멀찍이, 침묵의 세상으로부터 최대한 떨어져본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세상의 시선과 사람들의 우려 섞인 말들을 모두 거둬낸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의 실체를 직면한다. 침묵의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며 살아갈지, 짊어져야 할 몫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주어진 현실을 껴안고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로 결정한다.



갓난쟁이의 울음소리를 못 들어 아이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까, 도둑의 소리를 듣지 못하여 큰일이 나진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었으므로 감독에게 나는 그 ‘나아간 한 발자국’의 증거인 셈이다. <늑대 아이>의 엄마 말마따나, 정말이지 세상엔 모르는 것이 참 많고도 많다.           




늑대 아이(Wolf Children, 2012) 애니메이션 / 일본 / Hosoda Mamoru
반짝이는 박수소리(Glittering Hands, 2015) 다큐멘터리 / 한국 /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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