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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Nov 07. 2023

집 안의 하얀 코끼리


"아, 이거는 왜 샀을까?"

집안 정리를 하다 보니 참말로 왜 샀는지 후회되는 물건들이 많다.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집이 좁아 보일 때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사 와 쓸모없는 물건들을 버리곤 한다. 살 때는 분명 의미가 있었을 물건들이다. 보기 좋고 예쁘고 쓸모가 있어서 샀을 것이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자 하니 돈도 아깝고 후회가 된다. 아까워서 다시 집어넣고 몇 년을 더 묵히다가 결국에는 쓸모가 없다고 버리고 만다. 다 쓰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들은 더 아깝다. 꽁꽁 싸매두고 아끼다가 결국 먹지도 쓰지도 못하고 처음인 채로 쓸모없어진다. 얼마나 못할 짓인지 모른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마음에 들어 샀 머리띠가 부식이 되어 해져서 버, 예뻐서 샀지만 한동안 신지 않았던 구두도 가죽이 낡아 한 겹씩 떨어지더니 신지 못하게 되었다.

아끼지 말고 마음껏 썼어야 하는데 나중에 두고두고 써야지 하고 숨겨놓다가 중에는 잊어버리고 새로 산 것은 얼마나 많은지.

좋은 옷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입어야지 하고 아껴두다가 살이 찌고 체형이 안 맞거나 유행이 지나 못 입기 일쑤다. 사자마자 부지런히 입고 멋이라도 부렸어야 할 일인데 말이다. 비싸게 주고 산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러한 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바래고 어떤 시기가 지나면 어색해졌다. 구입했던 가격을 생각하니 아쉬워 쉬이 버리지도 못하고 자리 보전하며 가끔 눈요기만 하곤 했다.


 고대 태국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한다. 불교 국가에서 하얀 코끼리는 신성시된다. 왕이 선물한 코끼리에게 일도 못 시키고 많이 먹는 덩치 큰 코끼리를 애지중지 돌보고 키우다 보니 신하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하얀 코끼리는 겉은 신성시되지만  사용할 곳이 없는 애물단지를 뜻한다. 이런 하얀 코끼리처럼 보기는 좋지만 자리만 차지하거나 쓸모가 없는 것들이 내 주변에 더 있을까.


정리할 때마다 앞으로 무엇을 살 때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사야지 하다가도 오감이 만족되면 덥석 사고 마니 이런 식으로 물건들은 늘어난다.

한편 연식이 되었지만 두고두고 쓰는 물건들이 있다. 이런 물건들이 진국이다.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오래된 장 안을 차지하고 나와 함께 세월을 묻어간다. 결혼할 때부터 함께 한 오래된 손톱깎기와 반짇고리 같은 것이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진득하고 한결같고 쓸모 있어 찾는 사람말이다.


그런데 장 안에는 무쓸모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 많았다. 아이가 어릴 적 찍은 사진 남편과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 같은 건 쓸모가 있냐 없냐를 떠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정리를 하다 보니 쓸모 있다 없다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던 내가 우스워졌다. 나는 이제 피아노를 잘 치지 않지만 엄마가 어릴 적 사준 피아노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뭘 잘 사달라고 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엄마 졸라서 산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물건들은 쓰임이 그다지 있지도 않은데 큰 의미를 부여하며 부여잡고 있었다. 정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추억이 서려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인간 관계도 저 사람이 내게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로 나뉠 수 있을까. 하물며 물건도 아닌 사람인데. 혼자인 게 좋다가도 날이 좋아서, 그냥 비가 와서 커피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날,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며 잡담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귀한 하루가 된다. 그런 삶이 진짜 값진 삶이다. 그런 사람이, 물건이 진짜 나와 평생을 함께 하는 것들이 아닐까.

렇듯 사람도 물건도 정리가 쉽지 않다. 기준을 정했다가도 그 기준조차 무효해지기 십상이니 정리라는 게 늘 내게는 어렵기만 한 일이다. 마음까지 정돈되는 삶이란 어려운 숙제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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