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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Oct 25. 2023

야경

빛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질까.

어두운 밤의 파수꾼은 등대처럼 우리에게 빛을 내어주곤 한다.

그날 밤의 풍경은 마치 파수꾼 같았다. 어두운 자리를 밝혀주는.


"저 불빛을 봐."

무슨 불빛을 바라보라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그제야 창 밖으로 시선을 건네었다. 바다 옆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아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멀리 수평선에 불빛이 보이지 않느냐고 해서 다시금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나는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시무룩하게 그저 지금 지나는 도로의 가로등만 무심히 바라보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 다 어둡기만 해서. 하늘인지 바다인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무슨 불빛을 보라는 지도 모르겠어. 하늘과 바다 사이의 빛을 보라는 건지 저 멀리 도심지의 불빛인지 도로 위 불빛인지도."

그렇게 한동안 야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로 위에 늘어선 자동차의 불빛이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내는 것은 자동차 한 대 한 대가 내는 불빛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자동차 한 대가 불빛을 내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짙푸른 도시의 야경이 된다. 마찬가지로 빽빽하게 지어진 아파트에 한 집 두 집 켜진 불빛과 도심지 상가에 밝혀진 수많은 불빛이 모두 어우러지면 우리가 매일 밤 마주하는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이 된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 비행기의 창가에서 곧 도착할 서울의 야경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내가 살고 있었구나.' 하고. 새로 도착하는 나라의 이국적인 야경 또한 여행의 시작에 앞서 설레는 느낌을 주곤 했었다.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삶의 의미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주어진 대로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듯할 때가 있다. 그조차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저 떠밀려 다니며 사는 도시의 밥 버러지같이 느껴진다.  


야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그 꽉 막힌 도로 위의 차 속에 내가 있었을 것이고 나는 도시의 야경에 빛을 내어주는 하나의 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하나 빛을 내는 존재였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과학 시간 배우기를 위치가 바뀌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을 항성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지구 곁에 있는 항성으로는 태양이 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 내는 것일 뿐 달 스스로가 빛을 내지는 못한다. 스스로 빛을 내는 우리는 항성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어두워진 밤 고단한 일을 마친 직장인 또는 하루 일과를 마친 학생은 지친 발걸음을 내딛으며 집으로 향한다. 고단한 밤, 일상에 지쳐 각자의 빛을 잃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우리는 밤에도 변함없이 빛을 내고 있었다. 자동차의 불빛과 대중교통의 불빛, 그리고 집의 불빛으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냈다. 태양 빛의 힘을 빌린 밤하늘의 달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알아주어야겠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그 빛이 누군가의 밤에 소중한 위로가 되어주고 멋진 야경으로 매일 밤을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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