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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Dec 17. 2023

< 첫사랑 그리고 첫 키스의 향기 1 >

- J에게 -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 1학년 2학기를 막 시작한 초가을이었다.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그날, 친구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친구는 말했었다.

성격 좋고 얼굴도 예쁜 편인 친구가 있는데 한 번 만나보라고...

나는 '예쁜 편'이란 애매한 단어에 꽂혀서 별 기대 없이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저녁쯤 학교 후문 호프집에서 주선해 준 친구와 함께 소개받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면서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잠시 동안 아주 느리게 흐르는 듯 느껴졌고, 이 세상에 칠삭둥이로 태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 감사했으며, 또한 그 자리를 주선해 준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고마운 자식......'

친구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전하자 친구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뭐 이 정도로......'라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긴 생머리.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큰 까만 눈.

육감적인 몸매.

검정 미니 스커트가 잘 어울렸던 그녀는 우리와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그녀를 만나기 이전에 다른 이 들과의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귀는 단계까지는 가지는 못했다.

그것엔 고등학교 때까지 착실하게 학교와 집만 오갔던 내 어린 날의 성실함으로 인한 서툴음도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통하는 느낌, 대화를 나누면서 느껴지는 통하는 느낌 같은 게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단지 그녀의 외모에서 느꼈던 호감뿐 아니라 대화를 통해 느껴지는 느낌과 상대방을 대하는 소소한 행동들 하나하나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헤어질 때쯤 그녀에게 말했다.

"난 복잡한 거 싫어하는 사람이라 '밀당' 같은 거 잘 몰라.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난 네가 맘에 드는데... 우리 오늘부터 1일 할래? 그러면 나중에 100일 계산하기도 쉽잖아."

그야말로 나의 고속 급발진에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래......"

"그럼 우리 내일 영화 보자. 시간은 내가 삐삐로 알려줄게"

그렇게 'J'와의 내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우린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봤다.

솔직히 그 영화를 오전에 봤는지 오후에 봤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영화를 봤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그게 로코물인지 액션물인지 공포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극장 안에서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언제 잡을까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목은 타는데 침 넘기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또 왜 그렇게 손에선 땀이 나던지...

그렇게 잔뜩 긴장만 타다 극장 안에선 그녀와의 손잡기에 실패하고 극장을 나와 시내를 함께 걸어갈 때 '에라 모르겠다'란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가 조심스래 내 손을 맞잡아 주었다.


부드럽고 조막만 한 하얀 그녀의 손을 잡고 우린 한 동안 시내를 걸어 다녔다.

가을 오후 햇살은 따사로웠고 음악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 음악들은 흥겨웠으며 맞잡은 손을 통해 흐르는 그녀의 살내음은 그 어떤 꽃보다도 향기로웠다.

마치 온 세상에 따뜻한 신의 은총이 내린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그 후 우린 자주 만났다. 거의 매일 시간만 나면 만났다.

그러다 내 친구들과 만났고 그녀의 친구들과도 만났다.

그녀를 본 친구들은 "처음에 무슨 연예인인 줄 알았다."며 날 부러워했다.

그러다 "같이 키스는 해봤냐?"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면 친구들은 항상 "에이... 아직 키스도 안 해보고 뭐 했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젠장, 손도 겨우 잡았데 키스라니......'


이젠 나의 지상 최대 과제는 그녀와의 키스였다.


나는 D-day를 12월 OO일, 내 생일로 잡았다.

그리고 그날 내 친구들과 그녀의 친구들을 포함해 5대 5로 단체 미팅을 마련했다.


- 2부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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