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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Dec 22. 2023

< 첫사랑, 그리고 첫 키스의 향기 2 >

- 겐조, 첫사랑의 향기 -

단체 미팅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학교 후문 근처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한 '스피드'라는 호프집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5명의 사내들은 술집 한켠 단체석에 앉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오길 기다렸다.


다들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명목으로 나오긴 했지만 미팅에 대해선 그다지 기대를 않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대체로 이런 식의 단체 미팅은 극소수의 호감형인 사람과 다수의 자리 채우러 나온 사람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J가 친구들을 데리고 호프집을 들어섰을 때, 그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희망 없던 사내들의 눈빛이 다시 희망의 불길로 타오르는 것을......

또 그와 동시에 친구들은 일제히 나에게 극진한(?) 고마움을 담은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고등학교 동문 1년 선배이자 같은 과 동기였던 형은 그녀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선 옆에 있던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형~, OO(내 이름) 형~~~"

나는 그런 그들에게 J를 소개해줬던 친구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뭘 이 정도로......'라는 눈빛으로 답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자리에 앉았다.

대체 어떻게 그런 친구들만 모았는지, 아니 어떻게 그런 친구들만 사귀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외모가 출중했다.

그 상태 그대로 미스코리아에 내보내도 1등부터 5등까지 싹쓸이할 것 같은 친구들이었다.

아! 물론 그중 '진(眞)'은 'J'차지겠지만......

그날따라 그녀는 더 예뻐 보였다.

하얀 패딩점퍼에 하얀 비니를 쓰고 왔던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미팅의 주선자이자 생일 당사자였던 관계로 상석(上席)에 앉았다.


술이 있고 남(男)과 여(女)가 있었으니 서로 간의 서먹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친구 대 친구'의 관계는 술이 몇 순배 돌자 금방 '친구 와 친구'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짝이 이뤄졌다.

사랑의 작대기가 겹칠 만도 하건만 그런 교통사고(?) 없이 자연스레 서로 짝들이 이루어졌다.


행복했다.

옆에는 사랑하는 예쁜 J가 있었고

내 친구들의 즐거운 모습에 행복했고 J의 친구들의 즐거운 모습에 또한 행복했고

그런 즐거운 날이 내 생일이었음에 행복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밖에 있던 화장실에서 다시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실내는 은은한 주황빛 실내등만이 밝혀져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겨울아이'란 노래...

그녀가 직접 선곡한 그 곡을 나는 그때 처음 듣고 지금까지 겨울이나 생일 때면 찾아 듣게 되는 노래가 되었다.

또 '드림하이'란 드라마에서 가수 '수지'가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었다.


J는 그때 알았을까?

그때 그녀가 들려준 노래를 내가 지금까지 듣고 또 그 노래를 통해 그녀를 추억하리란 걸......


노래의 시작에 맞춰 내 나이만큼의 초들이 밝혀진 케이크를 들고 그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내 친구들과 그녀의 친구들이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며 함께 했다.


태어나서 그런 대규모(?)의 생일축하를 처음 받아봤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촛불에 더 하얗게 빛나는 그녀를 보며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후욱 불어 촛불을 끄니 친구들 외에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함께 박수 치며 축하해 주었다.

그녀와 나는 우리들이 먹을 절반 정도의 케이크만 남기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손님들에게 접시에 덜어 나눠 드렸다.


케이크를 돌리고 자리에 앉자 그녀가 작은 쇼핑백을 나에게 건넸다.

쇼핑백 안엔 예쁘게 포장된 작은 박스와 작은 편지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엔 그녀를 닮은 예쁜 글씨로

'향이 너랑 닮은 것 같아서 샀어. 생일 축하하고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포장된 선물 박스엔 향수가 들어 있었다.

겐조 향수...

그다지 몸에 뭘 걸치고 뿌리고 다니던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향수라는 걸 그녀에게서 처음 받아봤던 나는 향이 궁금했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손목에 살짝 뿌려 시향(試香)을 해봤다.

가벼운 스킨향과 함께 묵직한 나무향이 느껴지고 차가운 느낌인가 싶다가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마치 그녀를 처음 만났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하는 기분 좋은 향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겐조 향수를 쓰고 있다.

정확하게는 겐조(대나무)와 불가리(블루) 두 제품을 쓰고 있는데 불가리는 가끔 겨울에 사용하고 겐조는 계절 상관없이 매일 사용하고 있다.


J는 그때 알았을까?

자신이 선물한 향수 브랜드를 내가 평생 쓸 거란 걸......


"오... 향이 너무 좋다. 정말 잘 쓸게. 고마워 J야. 다른 땐 몰라도 너 만날 땐 꼭 뿌리고 올게."

향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응. 잘 써... 그리고 생일 정말 축하해."


우리가 이렇게 향(香)에 취해 있을 때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로 바빴다.

"우리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 실내가 좀 덥다."

"응. 그래... 나도 좀 열 오른다 싶었어."


나는 J의 손을 잡고 2층 호프집에서 건물 1층으로 내려왔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고 건물 앞 인적 드문 거리에 어느 정도 쌓여가고 있었다.

"와... 첫눈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며 쏟아지는 눈송이만큼이나 그녀의 하얀 피부가 더욱 빛나 보였다.

나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계획했던 그녀와의 키스를 시도할 순간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상가 처마 밑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와의 입맞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음에도 그녀의 말들은 내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특히 향수의 향이 왜 날 닮은 것 같았는지 그 이유도 말해줬던 것 같은데 그때 내 오감(五感)은 오로지 말할 때마다 움직이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관계로 그녀의 말들은 먼 산 메아리처럼만 들렸다.


지금까지도 그녀가 그 향수를 고른 이유를 궁금해하며 '그때 잘 들을걸......' 하는 후회가 들 줄 알았다면 그때 그녀의 말에 더 집중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스무 살의 나는 훗날의 후회보다는 지금의 키스에 더 목말라 있었다.


"춥지? 그만 들어갈까?"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말들에 대한 나의 반응을 느꼈는지 그녀가 말했다.

"어? 어... 그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처럼 박력 있게 키스할까? 아... 나중에 비비안 리한테 뺨 맞지... 패스...'

'터프가이 최민수처럼 저돌적으로? 아니면... 좀 더 진한 프렌치...?'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회로를 돌리고 있던 중 들어가자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획만 하지 몸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바보... 바보...'

머릿속에서 수만 번의 '실행' 버튼을 눌렀음에도 몸에선 자꾸 '일시 멈춤(pause)'이 눌리고 '버퍼링'이 걸렸다.

'바보... 바보...'

먼저 일어서서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내 자신을 자책했다.


'에라... 모르겠다!'

계단 조명을 받으며 올라가는 그녀의 육감적인 뒷모습에 홀려서였을까? 갑자기 없던 용기가 솟구쳤다.


"J야!"

나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층계참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그녀에게 내 입술을 던졌다.

맞다. 이건 입술을 던졌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야말로 다짜고짜 키스를 밀어붙였다.


"읍!!!"

갑작스런 나의 입맞춤에 J는 당황했다.


- 3부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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