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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Dec 25. 2023

< 첫사랑, 그리고 첫 키스의 향기 3 >

- 사과향의 첫 키스 -

"읍!!!"


갑작스런 나의 입맞춤에 J는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툴고 조급한 나의 키스를 그녀는 그녀의 성격처럼 차분하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차분함은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오로지 '키스'에만 전념하던 나를 '그녀'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입술의 촉촉함, 부드러움, 가쁜 호흡, 그녀의 몸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는 작은 떨림들......

무엇보다 그녀의 입에서 전해는 향기로움이 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달콤한 사과향 같았던 그녀의 향기는 내 머릿속에 있던  클라크 게이블도 최민수도 프렌치 키스도 전부 잊게 만들었다.

그저 그녀의 입술을 느끼고 내가 느낀 그녀의 입술을 다시 내 입술로 그녀에게 답해줄 뿐이었다.


차가운 이성(理性)이 지배하는 시간 위에 조물주가 인간에게 주신 따뜻한 본능이 자리하는 시간이었다.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無)라는 우주 공간에 그녀와 나, 단 둘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무중력 공간을 떠돌던 전자(電子)와 전자가 만나 반짝하고 빛을 만들 듯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따뜻한 본능의 시간 위에 이곳은 언제든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계단이라는 염려의 차가운 이성의 시간이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그녀와 나는 무(無)라는 공간에서 유(有)라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풉..."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왜?... 왜 웃어?"

"몰라..."

멋쩍은 내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짧은 대답을 남기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야! 둘이 어디 갔다 온 거야. 다들 기다렸잖아."

호프집 입구에 마련된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던 고등학교 동문 선배가 그녀와 날 보며 말했다.

아마 갑자기 사라진 나와 그녀 때문에 삐삐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려고 했던 것 같았다.

"아니... 뭐... 잠깐 둘이 바람 좀 쐬고 왔어."

나의 어색한 대답에 선배는 마치 다 안다는 듯 음흉한 눈빛으로 날 보기 시작했다.

그런 선배를 보고 그녀는 뭔가 들켜버린 사람처럼 황급히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선배는 그녀를 따라가려는 날 붙잡았다.


"야... 좋았냐?"

"뭐... 뭘... 무슨 소릴하는거야!"

"짜식, 내숭은... 지금 화장실 가서 거울 봐봐 임마. 네 표정이 다 말해주는데... 그새 어디 달나라라도 다녀왔냐?"

"티... 티나?"

"어... 겁나 티나."


선배의 짓궂은 장난은 계속됐다.

선배가 친구들이 앉은 쪽을 향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O'자를 만들어 보이니 갑자기 친구 녀석들의 환호가 시작됐다.

다들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체로

"오~~~~! 오~~~~!"를 연발하는데, J의 친구들은 이게 무슨 영문인지 뜬금없어하는 표정들이었고, J는 대충 무슨 일인지 감이 잡혔는지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도 친구들이 사귄 기간이 얼만데 아직 키스도 못해봤냐고 놀리길래 내 생일엔 꼭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 친구들을 그렇게까지 자극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민망해하는 J를 위해서라도 상황수습을 해야 했다.

나는 선배와 친구들에게 그만하라는 눈짓과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놀림의 기운이 쉬 가라앉겠는가?

그럼에도 고개를 숙이고 킥킥대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우리 자리 옮기죠. 음... 시내 쪽이 어떨까요?"라고 J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모두의 동의를 얻어 2차는 시내 쪽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내 생일이었으므로 생일턱 내는 마음으로 술자리 계산을 하려는데 친구들이 이미 계산을 한 뒤였다.

'하...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녀석들...'

방금 전까지 날 놀리던 친구들에 대한 얄미움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다들 가시죠. 2차는 제가 확실하게 쏩니다."


우리는 택시를 나눠 타고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가는 택시 안에서 친구들은 짓궂은 질문들을 계속해댔다.


"좋았냐?"

"그럼 나빴겠냐."


"언제 그렇게 스리슬쩍 하고 왔냐?"

"둘이 바람 쐬러 나갔다가... 그냥 그렇게 됐어."


(선배) "하... 짜식, 다 컸네. 다 컸어!"

"형이랑 나랑 한 살 차이거든!"


대답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내 속에선 뜻 모를 기쁨이 느껴졌었다.

뭐랄까. 어려운 숙제를 마친 기분? 게임 속 고난도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은 기분?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고 나서 자랑하고 싶은 학생의 마음?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감정들의 바탕엔 J의 마음속에 내가 크게 한발 더 다가선 것에 대한 행복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내의 한 술집에 다시 모였다.

내 친구들과 그녀의 친구들은 더 가까워졌고, 나와 J 또한 그전과는 다른 느낌과 색깔의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스케치로 완성된 그림을 고운 수채물감으로 채색하듯 이전보다 더 진하고 확실해진 감정들을 서로 손을 잡고 서로 눈을 맞출 때마다 그녀와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도화지 위에 물감이 젖어들 듯 우린 서로에게 그렇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들이 머문 술집은 시내에서도 유명한 술집이었다.

저녁 시간대엔 무명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밤 10시 이후엔 손님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순위를 매겨 경품을 받는 그런 술집이었다.

가수들의 노래시간이 끝나고 나는 웨이터를 불러 종이에 내 이름과 무대에서 부를 신청곡을 써냈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노래를 꽤 잘한다는 소릴 듣고 살았었다.

큰 사고 이후 지금은 그 재주를 잃어버렸지만, 국민학교 때부터 합창부 활동과 독창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전교생들이 다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또 고등학교 땐 교내 음악제에서 1등도 했었다.

그래서 노래에 대해선 남들보다 조금 자신이 있었다.

나는 J에게 내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앞서 몇 사람의 노래가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무대에 서는 일은 항상 떨리는 일이었지만 그때만큼은 J가 보고 있었기에 '잘 불러야 한다'는 중압감이 떨림을 이겨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실내조명보다 그녀의 눈빛이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부른 곡은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였다.

나는 노래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날그날 노래의 기복이 있는 편이었는데 첫 소절 "이젠..."을 부르는 순간 '아... 오늘 목 좀 트이겠구나' 싶었다.

감이 좋았다.


"사랑을 할꺼야. 사랑을 할꺼야. 아무도 모르게 너만을 위하여.

 나를 지켜봐 줘. 나를 지켜봐 줘. 아무도 모르는 사랑을......"


노래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그녀만을 쫓았고, 노래 듣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나만을 쫓았다.


- 4부 계속 (글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다음편이 마지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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