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07 #worship ##wooridle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23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7년간 다스리며 성전 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죽었습니다. 예후는 개혁의 아이콘이었고, 45년간 이어진 오므리 왕조 즉 아합을 멸한 예후입니다. 엄청난 업적을 1년 만에 행했고 개혁했지만 나머지 27년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의 집을 떠나지 않았고, 전심은 없고 열심만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반해 남유다는 요아스 39년을 정직히 살다가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고 나서 1년 동안 온갖 악을 행했는데요, 1년 악 행한 것과 27년 행한 것은 누가 나쁠까요? 1년이나 27년이나 우리의 마지막은 예수님으로 끝나야 합니다.
여호아하스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게 선하고 위대한 것이 많지만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떠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것이고, 느밧의 아버지를 욕보이게 한 것입니다. 죄는 나 혼자만의 죄로 남지 않고 전염됩니다. 세상의 어떤 전염병보다 강한 것이 죄입니다. 바로 금 송아지 숭배입니다. 10 지파가 따라서 나가 북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나라가 분열되었다고 신앙이 분열된 것은 아닌데, 예배를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하려고 번쩍 번쩍이는 금송아지를 세웠고, 제사장도 아무나 세웠습니다.
남쪽으로 가려는 백성들을 막으려고 공권력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북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보면서 살았고 그들의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사로 선택하는가? 세속사로 선택하는가를 늘 눈으로 보기에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대로 따라갑니다. 집안이 힘들게 자란 사람 중에서 아이들이 잘 자란 곳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원색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풍토를 알아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들이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육신의 모든 습관들이 죄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성품과 열심히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가 너무 좋은 환경을 준 아이들은 자기들이 노력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환경이 어려우면 너무 노력하는 자기 의가 많습니다.
(적용 질문)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까? 사람이 보기에 악하니까? 육신의 죄의 집합소라는 것이 믿어지세요? 악인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습관은?
2. 학대를 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십니다.
늘 범죄 하니 늘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데 이 "늘"이 은혜입니다. 하사엘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벤하닷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이 끝날 줄 알았더니 계속되고, 학대하는 아랍만 이상한 게 아니라, 이럴 때 민족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남과 북은 신과 불실을 비교하는 모델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학대가 여호아하스를 정신 차리게 하였고, 여호와께 간구하게 합니다. 간구하다는 뜻은 아프다 약하다 누그러뜨리다는 뜻이 됩니다. 즉 무섭게 굳어진 여호와의 얼굴을 누그러뜨리고 부드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금송아지를 쫓고 있을 때 누군가를 통해 학대를 받게 되고, 학대를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학대를 받으니 여호아하스가 간구하게 됩니다. 나는 죽어도 싼 인생인데, 학대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통해서 기도해야 할 대상을 알려주시고, 금세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내 백성이고, 그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되는 것은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아하스가 살려달라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악한 왕의 간구라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후에게도 약속하셨는데 왕위가 4대를 갈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과 예후를 향한 약속의 말씀 때문에 그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가운데도 들으십니다. 학대받는 상황가운데 있으면 주여 도와주세요라고 저절로 간구가 나옵니다. 내가 학대를 잘 받아서 구원받는 것은 잘 기다리는 것입니다. 양육이 잘 되는 사람은 목장에서 잘 듣고, 잘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앗수르가 구원을 했지만 구원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구원자의 이름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자가 누구인지보다 그 구원을 베푸시는 대상인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자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내 삶에 구원자를 모시는 것입니다. 전과 같이,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적용 질문) 학대받는 고난 가운데 낮아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간구하나요? 억울한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늘 범죄 하니 늘 넘겨주시는 것이 이해됩니까? 대를 이어 학대받는 것이 있습니까?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일상이 최고의 축복임을 믿습니까?
3. 은혜를 잊으면 티끌같이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여로보암의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또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구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학대에서 벗어나게 하셨는데,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악을 떠나지 않았고, 금송아지를 섬기고, 아세라를 섬겼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세아 목상을 그만두고, 금송아지를 섬기고, 우상숭배 하면서 구원자에게 은혜를 갚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아람왕이 여호아하스를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멸절한다고 합니다. 미세먼지 같은 존재도 없이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마병, 보병, 병거 등 만 명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적이 있게 하셨습니다. 역대 지략에 기록될 것도 남게 하셨고, 왕위를 이어받을 요아스를 남겨 두셨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악한 왕인데, 그래도 남겨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예후도, 그 아들 여호아하스도 악했지만 4대를 이어간다는 약속으로 그것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람 이삭 야곱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큐티와 예배드리고 목장 가서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것이 최고의 은혜이니 최고의 응답이니 다른 곳을 가면 안 됩니다. 집 떠나고 이혼하고 자살하고 벗어나려 하는 게 주신 은혜를 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멸절당하는 것 같아도 남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루터기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인간에게 한 약속이라도 그분의 약속을 깨신 적이 없고 반드시 지키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지키기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 지는 것 같이 지켜야 합니다. 내가 나쁠 때는 안 지키고, 좋을 때는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악해도 하나님의 사랑인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며, 그것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또 금솜아지를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지금 멸절당하는 가운데 남겨진 것은? 은혜를 기억하며 이번주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섬김은? 자녀들이 나를 닮기 원합니까?
https://youtu.be/HuCWYetdK48?si=L6MdF8IsSv3Ita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