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결심하고, 빠르게 포기하고, 빠르게 결단하고, 빠르게 후회하고. 이것이 단지 모든 것을 쉽게, 가볍게 생각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성급하게 결정하는 이유는 대부분 겁이 나서 일 가능성이 많아요. 살아온 이야기가 매끈하지 않고 흉터 투성이라면 더 겁이 나는 게 당연하겠죠. 무섭거나 해로운 것을 맞닥뜨릴 때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까요? 그것은 성급하거나 사안을 쉽게 생각해서가 아닌 본능적인 움직임, 자신을 보호하려는 반사적인 행동일 뿐이에요.
대인관계 같은 엄중한 사안을 어찌 본능적으로 결정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랑이나 곰을 만났을 때 도망치거나 몸을 숨기는 것은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세상에서 제일 엄중한 사안에 대한 대처이죠. 여기서 자칫 상대를 호랑이나 곰처럼 무서워해서 뒷걸음질 친다는데 초점을 맞춰서는 안 돼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목숨처럼 엄중히 여기는 사안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거예요.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 무거워서 그럴 수 있어요.
이별의 경우(우정, 사랑, 이직 등)를 생각해 볼까요? “당신은 어쩜 그런 말을 쉽게도 하느냐.” “너에겐 모든 게 가벼울 뿐이구나.” 같은 말은 겁이 많은 사람에게 억울한 감정을 주곤 해요. 쉽지 않으니까요. 가볍지 않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뿐이니까요. 이별은 모두가 피해자가 되기로 하는 것 인지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의 심정도 마음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뒤따르는 빠른 후회, 죄책감도 오롯이 겁 많은 사람이 견뎌야 하는 몫이에요. 옳다고 생각해서 결정했지만 상대가 나를 끈기 없는 인간으로 무시하고 떠나버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숱하게 몰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전부 이겨내야 해요.
우리 서로 비난하지 말아요. 아무리 미워도. 사연 없는 인생은 없고, 겁 많은 사람, 용감한 사람, 무던한 사람의 의사도 모두 존중받아야 해요. 모든 걸 쉽게 생각하는 성격 같은 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쟤는 성격이 저래서 되겠어?‘ 하며 그들의 결정을 성격으로 퉁쳐버리지 말아요 우리. 애초에 사는 것 자체를 통으로 봐도 쉬운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거 봐요. 쉬운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