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디 Sep 15. 2023

사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새로운 앨범에 넣을 곡들을 추가하고 있다. 이제껏 작업했던 곡들과 다르게 다음 앨범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기게 되었다. 이제껏 주로 내 속에서 이는 말들을 노래로 담았다. 나의 이름에 대해, 주변을 의식하는 나의 모습,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 강가에서 살고 싶은 꿈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얼마 전 공연에 빠짐없이 걸음 해주시는 소중한 팬 분께서 정규앨범을 발매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라며 떡을 보내주셨다. 딸기가 들어간 귀여운 떡을 입에 물고 2년간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들을 주로 생각하며 보내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잔디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데’라는 말을 들었다. ‘사랑하는 친구 잔디에게’라는 엽서가 냉장고 문짝에 추가되었다. 매일 아침 ‘잔디씨,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요?’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병원에 갈 때면 이른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손을 잡으러 나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다정함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혼자서 턱에 팔을 괴어볼 때면 나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보는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다음 곡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대충 '썼으니까 낼 수'는 없는 한 사람에 대한 곡이 수 년째 방치되어 있다. 그는 미술학도로, 내게 자신의 작품을 영감 삼아 곡을 써달라고 했다. 우리는 번잡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만나 서로의 작업에 대해 대화하며 걸었다. 자신의 서정을 참고해 달라며 음성 메모로 기록해 둔 그의 즉흥적인 흥얼거림도 들려주었다. 아주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이따금 잔뜩 힘이 들어간 진성도 섞여있었다. 그는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 시리즈가 너무 좋아서 대사를 통째로 외워버렸다고 했다. 오른쪽에서 옷도 팔고 신발도 팔고 왼쪽에선 가방도 모자도 파는 시끌시끌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그는 내게 잘 들리라고 큰 소리로 에반게리온 대사를 읊어주었다.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가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다’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미사여구가 불필요할 만큼 멋졌고 나는 감동을 받아 곡을 쓰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남의 작품을 나의 감상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그를 떠올리며 내가 느낀 그의 특징에 대해 묘사하는 가사를 썼다. 그런데 여기에는 작품에 대한 감상이 빠져있다. 들여다보고 볼수록 그의 작품들은 관람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너무 오래 감상하다 보면 외려 겁이 나곤 했다. 내가 이 작품과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는 게 맞을까, 다만 첫느낌 그대로만 표현하면 그만일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에반게리온>을 보기로 했다. 다행히 넷플릭스에서 에반게리온 오리지널 TV시리즈가 제공되고 있었다. 26편이라는 지난한 편성에 겁을 먹기야 했지만(나는 평소 시리즈물을 잘 보지 않는다) 봐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본 <에반게리온>은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 것 같다. 끝 부분은 연이어보기가 어려워서 한 에피소드를 몇 번이고 나누어 볼 만큼 자극적이었다. 사람은 특정 자극에 노출된 이상, 그것을 보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나 또한 그랬다. 모든 캐릭터가 갖은 사연을 더해 외치고 있는 쓸쓸함, 공동체에서 사랑받은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한 개인의 투쟁, 그것을 이용하는 또다른 쓸쓸한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주권자의 아주 정교한 설계에 의해 섭리화 되는 괴랄함. 그는 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거나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긴 작품의 대사를 줄줄이 외웠을 것이다. 다시 그를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을 보고나니 그의 뉘앙스가 조금 더 이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시 곡을 써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엉뚱했던 그의 말투와 표정, 이따금 다른 곳을 보며 말을 하는 습관 같은 사회적인 제스쳐는 더 이상 곡에 필요치 않았다. 다시 풀어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쓸쓸함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날들을 보내다 얼마 전,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님의 강연에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양희은 님의 곡을 재즈 편곡한 버전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정말 좋았다. 그 곡이 가진 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줄곧 그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서 조금 더 그 감정을 파고드는 시간을 갖으려 하고 있다. 앞으로 이제껏 잘 쓰지 않던 사랑, 우정,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써볼 참이다. 이 일은 핏줄 외의, 어쩌면 어깨를 스치듯 서로 영영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었던 타인의 사랑으로 가능해졌다. 사랑은 사람을 안도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를 주니까. 덕분에 나는 언젠가 그의 쓸쓸함에 대해서 노래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과 쓸쓸함은 어떤 순환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고 결국은 누구도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그것을 알았으면, 아주 많이 쓸쓸해도 혼자는 아니라는 것을. 가끔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알아봐 주는 사람이 다가온다는 것을.


 그가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들어 한동안 곡을 매만지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가 멋진 친구들 곁에서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쓸쓸함을 노래할 수 있겠다. 최선을 다해 그를 담아볼 것이다. 그의 쓸쓸함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아주 세밀한 이유 같은 것이다. 언젠가 무대에서 그에 대해 노래하게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러면서 기타를 잡고 가는 연필로 그의 이름을 여러 번, 적어본다.






오는 일요일 홍대 어귀의 오래된 소규모 공연장에서 정 있는 분들과 공연합니다.

홍콩에서 오신 Jasmine Kelly 그리고 피카, 여름눈과 함께 합니다.

9/17 일요일 저녁 6:30~8:30(Feel 받으면 더 늦게까지 하기도 함)

티켓(현매) 20,000원

작가의 이전글 쉬운 게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