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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Oct 26. 2023

계획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이 만연하다. 그러면서 치사하게, 너 좀 변했다? 는 말도 또 만연하다. 느낌은 알겠지만 정답은 없다는 건가. 요즘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반시계 회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변하겠다고 말하면 무조건 변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나 J가 되고 싶어.

(여기서 나의 MBTI를 공개하면 색안경을 유발할 수 있으니 함구하겠다. 다만 한 가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MBTI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의 그것은, 무슨 부동의 의지인 양 이백 육십 번째 똑같이 나왔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오히려 신나는 사람이었다. ‘사고 많은 삶을 살고 싶어라, 충동을 지향한다.’ 등 내가 쓴 일기에 속속 보이는 무모함 찬양은 어쩌면 내가 나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공이 큰 것도 있다.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그때 벌이지 않았다면,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으리라.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인생 제2막이 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예측불허의 사람에서 예측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드디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건강이 안 좋아졌다. 프로 잠꾸러기로서 낮잠까지 쏙쏙 챙기며 살아오다, 수면 리듬이 한 번 깨지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일과가 불규칙해졌다. 전 날 잠을 잘 못 자면 다음날 더 자면 되는 선에서는 해결이 안 되었다. 그리하여 가장 빠른 변화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게 된 것이다. 12시에 눕고 6시에 일어나는 일상을 지켜보려고 노력하니 조금씩 무언가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매일 로봇처럼 일어나지는 못하기에 일어나자마자 눈을 꿈뻑 꿈뻑하면서도 머리를 팡팡 돌려야만 한 판 깰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나서 창문을 열거나 그래도 정 안되면 잠옷 바람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가버린다.(세수, 양치 생략 할뿐더러 양말 당연히 안 신음) 그러면 잠이 깬다. 이렇게라도 일찍 일어나다 보니 좋은 점은 하루가 실제적으로 늘어난다는 점과 자신 있게 밥을 한 끼 더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덤벙대는 성격을 개성으로 합리화시키는 귀엽던 시절이 이제는 갔다. 나에게 음악을 만드는 일은 노래를 부르는 일 보다 훨씬 더 많은 꼼꼼함을 필요로 했다. 대충 하면 평생 후회하는 작업이기에 댕강댕강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처음 낸 EP앨범은 산문집 형태의 작은 책자로 제작했는데 ‘내 스타일’대로 작업했다가 아직도 땅을 치면서 나의 허술함을 원망한다(삼주의 한 번 꼴로 땅을 침). 이후 발매한 1집 정규앨범은 즉흥성을 적당히 살리면서도 최대한 꼼꼼하게 작업해 보고자 했지만, 11개월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지나오면서 끝내 힘에 부쳐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이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땅 침). 앞으로 나올 2집은 신잔J가 만드는 2집으로 만들고자 신중에 신중을 겹겹이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 간에 관계에서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는 충동적인 성향 때문에 다양한 상처를 받았다. 마음은 아주 특별한 성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무리 다쳐도 굳은살이 배기지 않는다. 마음은 비슷한 양상의 공격으로 다쳐도 매번 다르게 아프다. 그 어떤 사람을 만날 때에도 ‘그냥’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알이 이유를 따지며 관계를 맺을 수야 있겠냐만은, 마구 쏟아내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을 고려해서 조심조심, 신중하게 관계를 지어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는 지키고 싶은 약속만 만드는 게 우선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렇듯 함부로 사는 게 좋던 나는 함부로 살지 않고 싶다며 조금씩 말을 바꾸어간다.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일들은 미리 계획하고 실행하고 만끽하고 뒤돌아보는 순서로 좀 해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한번 MBTI 검사를 했을 때 큼지막하게 당신은 J입니다. 하고 나오겠지? 그때 쾌재를 부르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사람은 변하는 거야!


그때까지 MBTI가 유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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