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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Nov 13. 2023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 : 호의에 대하여

 글은 어찌저찌 주워 담을 수 있지만(수정기능) 말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을 뱉는 순간 희미했던 사실은 뚜렷한 사실로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먹지 않았으면 좋았을 마음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 때로는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은 선택하기 어려운 반면, 말은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말을 뱉거나 아끼는 것은 마음에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그 마음을 인정하자는 건가? 하는 질문처럼.


 호의를 남발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순수한 호의가 돌고 돌아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베푸는 마음으로 부렸던 호의가 엉뚱한 오해를 사고, 그것을 당연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나의 호의 남발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아채고 무리한 부탁을 하고 어떤 사람은 나의 호의를 자랑삼아 자기 멋대로 소문을 낸다. 정말이지 ‘그러지 말걸.’ 하게 만든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인플루언서 한 분이(그분은 본인을 ‘할머니’라고 칭하면서 닉네임도 ‘하얀 머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지으셨다. 그마저도 정감이 가는 부분이다.) 사람을 벗 할 때는 그가 '타인에 대한 연민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하셨는데, 퍽 인상적이었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주변인을 떠올려보니 정말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싫어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사람, 피해 주는 사람은 무조건 거르는 사람,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타인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그저 시니컬한 사람이 아닌 연민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말로부터 드러난다. 이제는 그런 사람임을 알아채면 그만, 말이 아껴진다. 대화는 시간을 쓰는 일이다. 어떤 말을 해도 지나서 생각해 보면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 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호의를 베푸는 일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반대로 순수하고 무한한 호의를 받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갚아드려야 한다는 사명감 마저 들도록 감사하지만, 감사조차 섣부르게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한다. 진심의 감사를 표현할 때에는 이제 가야 할 사람을 붙잡고 인사를 남발하는 것보다 진심을 잘게 모으고 굴려 아주 동그랗고 속이 알찬 것으로 만들어서, 감사를 받는 사람에게까지 소중해지는 상태로 전하고만 싶다. ‘내가 신잔디에게 그러기를 잘했구나, 베풀기를 잘했어.’ 하는 마음이 가득 들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한숨 돌리면서 고마움에 대해 곱씹고 나름의 고민도 하면서 그를 떠올릴 시간이 마땅하다. 이 경우에도 말을 선택하는 시간이다.


 올해 4월, 제주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출판사 대표님을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북페어 행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섣부르게 개인적으로 연락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언젠가 마주치겠지, 마주쳤으면 하는 마음만 품어왔었다. 그러다 정말로 마주치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너무 큰소리로, 과장된 감사인사를 하는 바람에 대표님은 물론 함께 계시던 동행인까지도 놀라게 만들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왜 그렇게 오바했니?’ 하고 자책했다. 다음날 해당 출판사 부스로 조용히 찾아가서 점잖게(?) 책들을 구매하며 다시 한번 제대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감사를 하려면 이렇게 하면 될 것을, 하면서.


 말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너무 가볍게만 느껴져서, 마치 휘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을 글로만 표현하려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하더라. 말로만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표정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들려주어야만 전할 수 있는 ‘진짜’라는 거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말들, 물론 너무나 많다. 하지만 말로 해야만 전해지는 것들도 있다. 마음에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 정말로 그 마음을 인정하자는 건가? 하는 질문에 흔쾌히 ‘그럼.’ 하고는 말로 전하는 확정된 마음. 말은 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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