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사람, 너무도 많다. 하다못해 나까지 멋지니까.(여러분 모두가 멋집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 어 난 사 람) 그런데 우리가 보는 멋진 부분은 결국 사람의 어느 한쪽 면이라는 것을 안다. 매 순간 일 분 일 초가 다 멋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배우 정해인 제외) 한 유튜브 콘텐츠에서 확증편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리학 박사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한 학생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박사님은 그 학생에게 ‘한 번이라도 속으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죠? 친구가 너무 미워서 쟤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죠? 선생님한테 혼나고 나서 선생님을 욕한 적이 있죠?’ 하고 묻는다면 누구나 그런 적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박사는 이 사실만 가지고 해당 학생은 불효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학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정말 그러한가? 이제 질문을 바꾸어서 같은 학생에게 ‘부모님을 사랑하죠?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작거나 큰 선물을 준 적이 있죠?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죠?’ 하고 묻는다. 똑같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 박사는 이 학생을 부모를 사랑하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알고 선생님과 관계가 좋은 학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럼 이 중 이 학생은 어떤 학생에 속할까? 답은 당연히 둘 다이다.
우리는 한쪽 면을 보고 사람을 설명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을까?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혼자 일 때에도 나는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은 이랬다가 다른 날 저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날을 이루는 세밀한 요소들, 이를테면 이동한 장소, 만난 사람, 떠올린 사람, 기억, 생각, 몸의 컨디션, 전날 혹은 다음날 일정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주 많은 요소들이 현재 나의 상태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더라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유들은 무수히 많아서 어떤 날은 나 자신조차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한다.
이따금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비해 부족하거나 성장이 느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럴 때 앞서 박사님이 이야기 한 ‘확증편향’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니, 마음을 편안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부족하지, 느리지, 맞지. 하지만 이게 나의 모든 모습은 아니야. 내 기대보다 더 잘해온 것도 나에겐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나를 대표하는 모습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려 하자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어째서 멋지게 살아지기만 하겠는가. 단점이 매력인, 그것이야 말로 사람인데 말이다.
어젯밤 아몬드 빼빼로 세 봉지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잘났다, 못났다.’ 이런 것 좀 정하지 말자고. 그건 펙트가 아니라고. 뭘 계속 멋져지려고 해, 그냥 사는 거지. 이러면서 달고 고소한 과자를 계속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