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가 만나 섞이는 구역을 기수역이라고 한다. 처음 기수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맞아, 언젠가는 섞이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막상 강과 바다가 섞이는 과정을 떠올려보니 물이 섞이는 모습이라는 게 제대로 상상이 되지 않았다. 민물색 민물과 바다색 바다가 만나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섞이는 중 이어서 중간쯤의 오묘한 색을 띄게 될까. 민물과 바다 중 누가 먼저 자신을 버릴까, 혹은 양보할까. 민물이 바다로 되는 걸까, 바다가 민물로 되는 걸까.
얼마 전 싱어송라이터 물과음님의 곡 <기수역>을 무대에서 함께 부를 찬스가 있었다. 곡의 가사를 뽑아 한 음절 한 음절 따라 부르며 곡을 익히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가사의 아름다움이 배가되었다.
눈에 비쳐 번진 밤, 손에 담아 올리면
문득 흘려버린 넌, 눈에 남아 있어요. 눈에 남아 있어요.
물에 젖어 안긴 밤, 가만 들여다보면
잡아낼 수 없는 넌, 어디에도 없어요. 어디에도 없어요.
말을 거는 소리에 귀를 담가보면은
어디론가 이끌려 익숙한 풍경 위로 휘도는 강물
말을 거는 소리에 귀를 담가보면은
말을 거는 소리는 어딘가로 흩어져 가는 저 분말처럼
어딘가로 이어져 가는 너와 나처럼
소리 없는 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물가에 비쳐 번져있는 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물을 손으로 가득 담아 올리니 그만, 흘러버리고 만다. 그래도 눈에 남아있다. 흘러버렸지만 눈에 선하다. 말을 거는 소리에 귀를 담근다. 휘도는 강물로 귀를 담근다. 이런 표현들이 나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한창 수영강습을 받을 때 나는 유난히 자유형을 무서워했다. 물에 한쪽 귀를 담그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그 기분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얼굴 전체를 물에 담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포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물에 귀를 담가본다는 표현이 더욱 놀랍고 강렬하게 느껴진 것 아닐까, 싶다. 창작자가 의도한 메시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 곡을 연습하면서 다양한 감상에 빠졌다. 아름답기도, 무섭기도 했고 누군가가 그립기도, 마냥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에서 실연을 하는 날, '이 곡이 내가 만든 곡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만큼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 도중 한 음악가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기수역에 도달하면 희한한 악취가 난다고 한다. 민물의 비릿함과 바닷물의 짠내가 섞인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 말이 맴돌았다. 아름답고, 지독하고, 누가 양보하는지 모르겠고. '기수역, 생각해 보면 마치 사람 간에 관계랑 비슷해요~' 하신 창작자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자연에 감탄할 줄 아는, 이제까지 보다 더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하늘에 해와 달이 떠 있는 것조차도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지구가 사실은 동그랗다는 것 마저도. 자연을 가지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큰 그림을 보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분명히 마음이 넓고 매사가 섬세할 거야, 흐르는 물을 마음처럼 손에 담아 올려보는, 휘도는 강물에 귀를 담가보는 음악. 나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사색의 여백을 남겨주는 남는 음악, 제목을 들었을때 들었던 단순한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자꾸만, 더 자꾸만 귀를 담그고 싶은.
물과음 <기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