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디 Apr 25. 2024

노래하는 이유

소중한 마음들을 위해

 한 음악가와 차담 중 ‘노래를 지키는 마음’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보와 재화가 최고 가치인 시대로 가면서 노래의 가치는 얼마나 작아지고 있나 그리고 무대는 얼마나 더 어려워지고 있나.’ 생각했다. 그러고선 잘 모르는 음악가의 노래를 듣기 위해 3만 원과 주말 저녁 시간을 할애하는 관객들은 얼마나 멋진 삶을 사는지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사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노래를 들으러 와주는 마음과 굳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마음들의 소중함. 그래서 우리는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도 소중히 즐기자는 다짐의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주고받은 다짐의 말은 또 어떠한가. 그것 또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노래하는 모든 시간과 노래를 준비하는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자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 말이다. 각자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소리 내어 ‘소중하다’ 말하는 것의 차이, 그 차이가 바로 내가 노래하는 이유가 아닐까.


 새 음반을 녹음하는 중에 있다. 21년 1집 음반을 발매하고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레이블 없이 혼자서 음반을 만드는 독립 음악가는 오롯이 혼자서만 거쳐야 하는 지난한 시간이 있다. (그중 많은 부분은 제작비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 몇몇 과정을 마침내 통과하면 함께 만드는 사람이 생긴다. 동지가 생기기 전까지 혼자만의 과정을 잘 운용하는 것이 창작자 그 자신의 몫이라면, 작업물이 어느 정도 나온 시점에서는 함께 마무리하는 과정을 잘 지켜보는 것이 그의 몫이다. 첫 음반을 내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라이브를 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성취감이 나를 은근하게 눌러왔다. 새로운 곡은 쌓였지만 발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독립 음악가들이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 바로 2집(두 번째 음반을 내는 일)이라는 풍문을 체험했다. 다시 거쳐야 할 음반 제작의 수두룩한 과정들이 정말로 넘기 어려운 산처럼, 그것도 쳐다볼 때마다 위로 솟아나는 산처럼 보였다.


 그러다 작년 연말, 끔찍하게 우울했던 어느 날 새로 쓴 곡들을 불러보다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이 노래를 녹음하는 것 만이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을 때는 무섭던 음반 만들기가 갑자기 도망치듯, 죽음에서 도망치듯 시작되었다. 곡을 모아보니 모두 ‘사람’에 대한 노래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던 시선, 이별의 순간, 나무를 안으면 살기가 쉬워진다고 말해준 친구, 너무 아파 애도하지 못했던 한 사람.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모여있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너무나도 너무나도 이야기하고 싶어서 계속 계속 언제까지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매 달 무대에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그랬을까. 그 이야기들을 마구 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을까. 이따금 ‘왜(어떻게)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게는 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닌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해오다 보니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것 같다’는 뉘앙스로 답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로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괴로워서 하는 쪽이 더 맞아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정말로 좋은 게 노래라면 나는 노래 편에 서서 삶을 붙잡는 사람이 되었다. 3만 원을 챙겨 잘 모르는 사람의 노래를 들으러 외출하는 사람들, 무대를 준비하며 함께 연습하는 시간마저 너무나 소중하게 즐기고 싶다고 말해주는 동료 음악가.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지난한 시간도 기꺼이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느낌으로 왔다.




 6월에 발매될 2집 음반의 제목은 지당하게도 ‘사람에게’가 되었다. 모두가 소중했던 사람에 대한 노래이다. 지난한 혼자만의 몇몇 과정을 다행히도 무난하게 넘겼고 이제는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 힘으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노래를 좋아하고 그것에 시간을 쓰는 마음들에 대한 감사와 동경으로 나 또한 만드는 시간을 소중히, 더 소중히 즐겨야지, 다짐한다. 아무도 몰랐던 나의 새 노래를 듣고 누군가가 다가와 ‘이 노래를 기다렸어요.’하고 말해주는 날을 흘깃 꿈꾸면서.

작가의 이전글 그 죽음에 얼마나 나는 무심했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