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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02. 2024

지우는 사람

 기록에 대한 열망이 내게도 있다. 그러나 까먹는 것에 대한 열망도 내게 있다. 좋은 것만 기억하게 해 주겠다는 알약이 출시되면 인기가 많을 것이다. 기억하자파와 잊자파가 나뉘겠지, 서로를 겨냥한 파벌도 생기겠지. 이것은 머리를 째는 수술도 시술도 아니고 고작 알약 하나를 삼키면 그만이기 때문에 인기는 많을 것이다. 주로 이별한 사람들이 그것을 먹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치미를 떼고 인간성에 대해 익명으로 글을 쓰겠지.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주기적으로 모든 기록을 지운다는 사람을 만났다. SNS를 비롯해 일기장 마저 모두 버린다고 했다. 그게 현재의 나를 더 귀하게 여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록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지우는 사람에 대해 며칠 동안이나 생각했다. 말은, 이미 한 말을 지우는 건 불가능한데 기록은 지울 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기록의 뜻을 ‘지울 수 있는 말’이라고 붙이고 싶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사정없이 지운다고 했다. 다만 머릿속에만 남겨 둔다고. 잊히면 잊히는 대로. 이제껏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만 살아본 나는 처음엔 그것이 어딘가 무자비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를 생각했다. 지우는 사람.


 많은 사람이 기록을 통해 정신 건강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솟아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차츰 잠잠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자산이 된다고. 그래서 나는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아서 와이파이를 끄고 썼다. 이른 새벽에 썼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날엔 기록이 마치 합리화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언어들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무참하게 생략되는 기분들, 분별당하는 무분별함들이 속 안에서 농성을 벌였다. 정리되지 않는 마음은 없다는 규율이 바로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워야 했을까. 지우고 또 지우고 이른 새벽에 지우고. 생각만 해도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지우는 것이야 말로 얽매는 것들로부터 차츰차츰 해방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그와 같은 용기가 없다.


신용목 시인의 소설 <재>에는 한 인물이 일기장을 태우는 장면이 있다.


 누가 어둠을 가는 체로 쳐서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처럼, 어떤 시간이 모의 일기장이 만드는 불꽃 속에 사그라지고 있었다. 불꽃은 바닥에서 뒤척이는 나비 날개처럼 환하게 피어오르다 제 관절을 모두 꺾고 풀썩 주저앉아 알 수 없는 잿빛 속으로 숨어들었다. 모의 얼굴에 불빛이 아른거렸다. 활자로 머물던 마음이 마지막으로 모에게 다녀가는 듯했다. 날아오른 재가 저녁 어스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 신용목 <재> 112쪽


 언젠가 나도 내 일기장이 만드는 불꽃을 바라보며 어둠을 가는 체로 쳐서 흘려보내고 싶다. 활자에 머물던 마음과 마지막으로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가물어가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더는 무엇으로도 규격화되지 않는 채로 투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의 기록도 다만 현재의 기록만 약간 남아있기를. 그런 걸, 지우는 사람을 꿈꿔보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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